봉윤식 기자
덮기만 해서는 안된다
한인 2명 중 1명 꼴로 생기지만 남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병이다. 암, 성인병 등 많은 병들 가운데 질병 축에 끼워주지도 않지만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불편함을 끼치기도 한다. 몸에서 가장 불결하다고 느끼는 부위라서 수치심 때문에 의사에게도 말하기가 힘들다. 무엇일까? 치질이다. 치질환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하나는 환부를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봐 달라고 말할 수도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초기에 병을 고치지 못하고 상태가 악화된 후에야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곤 한다.
하지만 미디어 및 인터넷의 발달로 일반 대중에게 의학적 지식이 많이 알려진 요즘에는 몸에 이상을 느끼는 즉시 의사를 찾아오는 환자가 많아졌다고 한다. 초기 대응이 중요하고 설사 남에게 말하기가 조금 부끄럽더라도 병을 키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적 질병에는 여전히 문제를 덮고 감추려는 모습이 발견된다. 근래 시카고 한인타운의 골칫거리가 된 ‘차량 절도’ 사건의 수습 과정이 그렇다. 링컨가 절도는 주변 상업 환경에 치명적은 아니지만 분명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남들에게 숨기려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적 치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경우가 있었다. 절도 피해를 입은 한 식당이 한인 커뮤니티 차원의 공동 대응을 요청하고 한인회 및 총영사관에서 적극적인 협조 의사를 전달했지만 인근 한인 업주들의 반발로 무산돼버렸다. 이 와중에 피해 식당은 다른 업주들로부터 ‘왜 쓸데없이 나서느냐’는 항의까지 받아야 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경찰에 신고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지레 포기해버리거나 ‘괜스레 시끄럽게 해서 손님 떨어지면 결국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절도 사건에 대한 경찰의 무성의한 수사는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좋지 않은 소문 때문에 실제로 영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상인들의 ‘웬만하면 그냥 넘어간다’는 말에도 공감은 간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할 뿐이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항상 그런 일만 반복된다.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을 없애기 위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 시작은 시민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치안질서 확립은 생존권 차원에서 정부에 요구해야할 당연한 우리의 권리다. ‘우는 아이 젖준다’는 속담이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는 곳이 이곳 미국이다. 요구하지 않으면 받는 것도 없다.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그 때 한순간의 미봉책일 뿐 시간이 지날수록 수습이 어렵게 된다. 소문은 아무리 막으려 해도 결국 모두가 알게 되는 것이고 이 때 손님의 입장에선 고객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업소가 고객의 다른 무엇인들 신경을 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신뢰를 잃을 바에야 차라리 업주들이 공동대응을 외치고 범죄근절에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편이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더 낫지 않을까.
애초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는 질환도 치부를 가리고 문제를 덮으면 결국 곪아 썩고 만다. 민망하더라도 스스로 치유할 수 없다면 더 악화되기 전에 주위에 도움을 구하고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곳 링컨가 한인 업주들은 언제 의사에게 환부를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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