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피안의 호수’라는 시 말입니다.”
“아 -, 낭송하죠.”
언제나 새로운 해안으로 떠밀려가는,
영원한 밤 속에서 되돌아옴 없이 빨려 들어가는
우리, 이 세월의 주름짓는 물결에
어느 날 닻을 놓을 것이랴?
호수야! 한 해는 거의 저물어
사랑하는 사람이 찾던 강가, 그리운 그 물가에
보아라, 그 사람 앉았던 바위 위에
이제 나 홀로 앉아 있다.
그 날도 뿌리깊은 바위 아래서 너는 노래했고,
날카로운 바위를 치며 너는 부서졌지.
네 안에서 일던 파도의 물거품은 바람에 실려
고운 네 발을 적셔 주었지.
기억하는가, 그 날 밤을.
우리는 침묵 속을 노 저어 가고 있었지.
하늘 아래, 물결을 타고 들리는 거라곤
물결에 맞춰 젓는 노 소리 뿐이었다.
문득 세상의 신비한 소리가 일어
눈에 서언한 언덕에 울려,
물결은 숨죽여 듣고
그리운 그 소리는 말했었다.
세월아, 날개짓 멈추고
좋은 시절아, 거기 있어라.
생애 최고 아름다운 이 순간이
덧없이 사라지기 전에.
세상의 많은 불행한 이들,
가려거든 그들을 데리고 가라.
고통과 그들을 짓누르는 근심은 실어가고
행복한 이들은 내버려두렴.
그러나 내 소박한 소망도 아랑곳 없이
세월은 내게서 살며시 사라져 간다.
이제 곧 새벽이 오리니, 조금만 더 천천히…
나는 이 밤에 간절히 기도하네.
그러니 우리 서로 사랑하자.
덧없는 시간 서둘러 즐기자.
인생엔 닻을 내릴 항구가 없고,
세월은 가 닿을 기슭이 없어, 우린 그렇게 사라져 간다.
사랑이 남실남실 우리에게 찬 이 순간도
불행한 날들처럼 순식간에
우리한테서 멀리 달아나 버릴 수 있나?
두어두지, 세월아.
아, 세상에 사랑은 자취도 안 남고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잠시 행복을 주었다가 이내 빼앗아 버리는 시간,
다시는 도로 돌아오진 않으리라!
영원, 허무, 어두운 심연이여!
너희는 그 집어삼킨 날들을 어찌할 텐가?
말하라, 우리에게서 앗아간 그 덧없던 꿈같은 순간들을
우리한테 돌려 주지는 않겠는가?
호수, 말없는 바위, 칙칙한 수풀아!
시간이 멈춰있는, 아니 영원한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그대들이여!
이 밤을 기억하라.
아름다운 자연이여, 추억만이라도!
네 편안한 품 안에, 몰아치는 물살에,
고운 호수야, 내 눈웃음치는 물 언덕의 그 경치에,
늘어 선 전나무 숲에,
그리고 물결이 와서 부서지는 지친 바위들 속에
이 추억을 지켜다요
부르르 떨고 지나가는 하뇌바람.
호숫가를 찰랑이는 물결소리.
상냥한 빛으로 수면을 비추는
은빛 달 속에도 추억이 깃들게 하라.
흐느껴 우는 바람, 한숨 쉬는 갈대.
향기 그윽한 호수의 맑은 공기.
들리고 보이고 숨쉬는 것 모두가
말하라. ‘그들은 사랑했다’고….
포도주를 앞에 놓고 촛농이 꽃잎을 적시는 것을 바라보면서 시나 낭송하며 살고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잔과 잔을 부딪히며 ‘인생은 아름다워라’, 시를 낭송하고 싶다. 이 젊기만 한 밤, 이 찬란한 제주도의 밤, ‘내가 외롭다고?’ 나는 고개를 힘있게 가로 저었다. 살고 있는 자의 특권 속엔 생존의 이런 색깔과 향기도 있다. 제주도 행을 선택한 것 역시 생존자의 특권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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