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 주 피닉스 남쪽, 투산 서쪽의 사막 동네
주민들 편안하게 국경 넘어 자녀 학교에 데려다주고
허술한 펜스 있으나마나 야생동물도 마구 뛰놀아
가주·텍사스 경계 강화 후 불법이민 급증 ‘풍선효과’
부족위원회, 국경수비대의 월경 단속에 적극 협조
“혈맥 끊어 생태계와 문화 파괴” 방벽 설치엔 반대
미국과 멕시코 국경 700마일에 걸쳐 새로운 철제방벽이 설치된다고 해도 불법이민자 문제가 싹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속단할 수 없다. 약 75마일에 이르는 지역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사는 인디언 부족들이 방벽 설치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어 만일 계획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못하면 불법이민자들에게 무방비로 뚫리게 돼 있다.
이 지역은 다른 어느 국경지역보다 불법이민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그래서 중도에 사망자도 가장 많이 발생한다. 이 지역 인디언 부족은 국경수비대와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방벽을 설치하는 데에는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나쁘고 문화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틴다.
인디언 부족의 마을은 토호노 오담. ‘사막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두 나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살아왔다.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도 하고 가축을 풀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했다. 실제 엉성한 철책 중간 중간에 통로가 마련돼 있다. 또 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자신들의 전통의식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니 새 방벽을 세우면 소위 ‘혈맥’이 끊기는 셈이라는 것이다.
2마일 떨어진 학교에 두 자녀를 데려다주는 주민 라몬 발렌주엘라는 “오담 마을이 먼저다. 그 다음 미국이나 멕시코”라고 했다. 주민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 지역이 불법월경의 핫스팟이고 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철책 주변엔 물통, 옷가지, 가방 등이 널브러져 있다. 불법월경 증가를 입증한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멕시코 국경의 경계를 강화하면서 이 지역으로 불법이민자들이 몰리는 ‘풍선 효과’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물이 얕은 여울이 있어 익사 위험이 없고 트레일이 만들어져 있어 걷기도 좋다. 또 인디언 안내자를 만나 도시로 향하는 프리웨이에 접근하는 길을 물을 수도 있다. 물론 인디언들은 처음엔 이들을 도왔다. 물도 주고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불법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집에 들어와 물, 옷, 음식을 훔치는 경우가 늘었다. 심지어 집 안팎에 있는 콘센트에 셀폰을 충전하기도 한다.
인디언들은 수적으로 불법이민자들을 당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 이 지역에 배치된 국경수비대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순찰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먼지 나는 비포장도로를 포장도로로 만들자는 국토안보부의 계획에 찬성했다. 또 기존의 펜스에 차량통행을 저지하는 콘크리트 장애물을 설치하는 방안에도 동의했다. 그러나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철제 방벽 설치에는 반대하고 있다.
인디언 부족위원회의 한 위원인 버론 호세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유롭게 드나들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는다. 야생말, 코요테, 사슴, 토끼 등이 마음껏 누비며 뛰어놀아야 한다. 공고한 철제 방벽을 설치하면 이러한 자연의 흐름이 단절된다”고 걱정했다.
투산 지역 국경수비대 대변인 추이 로드리게스는 “우리는 인디언 부족들의 도움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협조관계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토호노 주민은 국경지역 부족 1만4,000명과 멕시코 지역 인디언 부족 1,400명을 포함해 약 3만 명. 철제 방벽은 정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야기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철제 방벽을 설치하면 다른 취약지역에 불법이민자들이 몰리게 돼 있다. 그리고 철제 방벽이 없는 곳의 지하에 터널을 파 월경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 샌디에고에서 발견된 지하 터널이 이를 반증한다. 목숨을 건 월경도 다반사다. 그렇다면 인디언 부족마을처럼 경계가 느슨한 지역은 그야말로 ‘선호지역’으로 부상하게 마련이다.
불법이민 단속강화는 토호노 지역주민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토호노 오담 네이션은 면적이 280만 에이커로 코네티컷과 비슷하다. 순찰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게다가 지역 경제가 좋지 않다. 빈곤과 실업이 고질병이 되고 있다. 그러니 불법월경자들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인디언 부족위원회는 최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집에 불법이민자들을 숨겨주는 사람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겠다고 했다.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이미 이러한 일이 만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족 중 2명이 마약밀매에 관련돼 유죄를 선고받았다는 후안 손더스는 “다른 가정들도 거의 다를 바 없다”고 실태를 폭로했다.
부족 경찰 에드 페레스는 “불법이민자를 차로 90분 걸리는 투산 지역에 데려다 주면 1인당 400달러를 받는다. 그리고 마약운반의 경우 훨씬 더 많은 돈을 받는다”고 했다.
<뉴욕타임스특약-박봉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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