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여느 틴에이저와 다르지 않게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조카들이 있다. 그들에게 삼촌이라는 존재는 엄격한 부모님에게는 요구할 수 없는 것들을 부담 없이 요구할 수 있는 편한 대상이다. 어린 조카들의 티 없이 맑은 미소 앞에 서면 그들이 세상 무엇을 원한다해도 가져다주고 싶은 것이 외삼촌의 마음인가보다.
조카들이 초등학생이던 몇해 전 아이들을 커다란 서점에 데려간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잃던 조카들은 게임도 책으로 풀이하던 상태라 그 날도 게임 책 섹션에서 책 한권을 다 통달하겠다는 생각인지 내려놓지를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창 인기가 있던 그 책은 다 팔려 버리고 마지막 한권이 남아있었다.
조카들은 부모님이 게임이나 게임 책 구입에 제한을 두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편한 삼촌에게조차도 선뜻 책 사달라는 이야기 한마디 없이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 았다.
그러던 중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한 백인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조카가 보고있는 책을 찾고 있었다. 조카는 그들에게 자기가 보고 난 후에 그 책을 넘겨주겠노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어디론가 가더니 서점 매니저를 데려와 조카가 책을 살 것이 아니면 그들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카는 그 책을 내어놓질 못했다. 그 순간 나는 어린 조카 앞에서 수퍼맨이 되었다. 매니저라는 권위를 내세워 보고있는 책을 내어놓으라는 말을 듣고는 어린 조카 앞에 ‘수퍼 외삼촌 엉클 토마스’가 되어 나타났다.
조카의 작은 행복을 빼앗아가려는 불한당들에 맞서듯 서점 매니저에게 책값을 당당히 지불한 후 그 책을 조카에게 쥐어주었다. 조카는 “이 다음에 커서 삼촌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말과 함께 커다란 포옹을 해주었다.
수퍼맨이 된 나의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마음속으로 ‘대한민국 만세!’가 절로 나오고, 백인사회에서 억눌렸던 체기가 확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바로 그 순간 아들의 손을 잡고 서점 문을 힘없이 나서는 그 백인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백인들이 조카에게서 책을 빼앗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순간적 열등의식에 눈이 멀어 중년의 나이를 지난 절름발이 백인 아저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나이 든 아저씨가 뒤늦게 얻은 어린 아들이 조르는 바람에 겨우 힘겹게 서점까지 온 것 같았다.
한참을 후회했다. 조카들의 정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책을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너무 생각 없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조카에게 장애의 몸으로 서점까지 찾아온 백인 아저씨와 그의 아들에게 책을 양보하자고 이해시켰다면 훗날 즉흥적 미국 수퍼맨보다 한국인의 미덕을 본보기로 보인 훌륭한 삼촌으로 기억에 남았을 터인데.
인성교육이 더 필요한 조카들에게 싸워서 이기라는 모습만 보여준 셈이었다. 외삼촌을 동네 골목대장처럼 언제나 잘 따라준 조카들에게 철없던 삼촌의 미성숙했던 모습을 보여준 것이 가슴속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으로 남아 있다.
토마스 오 소셜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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