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간호사 1세대인 이규근씨(시튼병원 근무)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미국생활 만족, 그래도 고향산천 그리워
금남의 학과 문 두드린 남자간호사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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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에 올 때는 3년에 한번 꼴로 한국을 방문한다는 생각을 가졌지요. 그런데 그게 뜻대로 안되더란 말입니다. 미국생활이 이런 줄 정말 몰랐어요. 한국에 있을 때 미국으로 떠난 사람들 깜깜 무소식이어서 서운하게 생각했던 적도 많았었는데 내가 직접 살아보니 이제서야 이해가 된답니다”
데일리시티 시튼 병원(Seton Medical Center)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남자간호사 이규근씨(43) 는 한국이란 단어에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역시 그는 프로답게 곧 표정을 가다듬은 뒤 싱겁게 말한다.
“미국 생활요? 사람 사는 곳인데 뭐 별다르겠어요. 직장생활 만족하고 미국생활 만족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답니다. 그런데 고향산천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그는 한국 남자간호사의 1세대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집권하며 무척이나 어수선하고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1980년대 초반 학번인 그는 주위의 비아냥과 조롱을 뒤로 한 채 금남의 학과라 일컫는 간호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꽃 밭에서 놀았죠. 남학생이라고는 나 혼자였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다 좋은 건 아니더군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모두 내 차지였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때가 그리운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그는 한국에서 나름대로 유명세를 타기도 한 간호사였다. 서울대 응급실에 근무했던 그는 TV토크 쇼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언론매체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으며 남자간호사 문제가 나올 때면 항상 단골메뉴처럼 그의 이름을 언론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그의 이력까지 생각할 때 그가 결코 남자간호사라는 희귀함 때문에 얻은 유명세만은 아닌 듯 하다. 그는 그후 국가기관에서 수간호사로 일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 온 이유요? 남들하고 똑같습니다. 애들 때문에 왔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어지지 않았겠어요.”
그는 미국으로 건너온 이유에 대해 애들 때문에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면서도 “대학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품어온 나의 꿈도 저버릴 수가 없었다”며 생활 속에 파묻혀 버린 그가 품었던 한때의 꿈을 무척이나 아쉬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서 3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는 그는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일한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 주니까요.”라고 말한 뒤 “미국에서 하루 빨리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으려면 한국에서부터 철저한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라며 미국진출을 꿈꾸는 한국 간호사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제 9월 달이 되면 미국에 온지 5년이 된다는 그는 “내년쯤에는 한국 한번 다녀올 생각입니다. 미국서 낳은 늦둥이도 한국에 데려가 자랑해야죠” 라며 하루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준다는 늦둥이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이광희 기자> K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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