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자<수필가>
나이 때문인가. 해가 갈수록 더 많은 부음을 듣게된다. 잘 알고 있던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되는 수많은 사람 중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분들은 우리가 지닌 기억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기억의 중심에 깊이 자리잡은 사람이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마음의 상처가 된다. 평소에 가까웠던 사이라면, 그와 있었던 기억의 그림속에는 나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포함이 된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나 자신도 그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일생이 운명 같기도 하고 노력의 댓가 같기도 한 것은. 삶이 너무나도 불가사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맺어지는 우리의 만남도 그래서 운명같기도 하고 불가사의하게 이루어지기도 하는가보다. 당연히 우리의 인연도 여러 가지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만남이 어느 날 부음과 함께 종말을 고하게되면, 한 사람이 떠나간 부음은 여기저기로 전하여지고 생전의 모습은 마침내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가끔씩 그 사람을 기억 속에서 불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다. 기억을 통해서 우리들는 다시 만나, 회포를 풀 듯이 여러 가지의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기억 속의 사람들은 영원히 멈추어진 시간 속에서 산다. 나이도 먹지않고 더 이상 실수도 하지않고 그냥 그렇게 있다. 사진 속의 인물처럼 어느 순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남아서 자꾸만 나이를 먹는다. 꿈도 희망도 세월을 따라서 우리와 함께 흐르고 또한 나의 마음도 물처럼 흘러간다.
부음이 들려오는 날이면 나는 제법 심각해진다. 그것은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이제는 단절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감상에 빠지게도 된다. 나는 오늘 무엇으로 시간을 보냈는가. 오늘이 매일 모여서 나의 일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내가 보내는 평범한 매일들이 갑자기 중요한 날들로 느껴진다. 나의 일생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어질 것인가.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이 어느 날 나의 부음을 들었을 때에 어떤 모습의 나를 떠올릴 것인가. 나의 가족, 친구들에게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나는 정말로 어떻게 살았던 것일까.
그리고... 어쩐지 반성하는 나 자신을 문득 본다. 정말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었을까... 우선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하나씩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계획들을 하나씩 정리해본다. 참으로 모두가 미완성으로 있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들과도 그러하고, 나 자신과도 그러하다. 이제라도 그 흩어져 있는 모든 미완성의 욕망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차근차근 실천해 볼 수는 없을 가 궁리도 해본다. 그러한 나의 마음은 다시 한번, 서산으로 떨어지는 햇빛처럼 불타오르기도 하고, 눈부신 햇살이기도 하며, 이미 한 낮의 정열을 잃고 서서히 흐려지는 노을빛이기도 하였다. 다만, 이제는 땅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기억들이 하나씩 튀어 오른다. 그것은 아련한 감정을 불러내면서 해를 따라 서쪽으로 퍼져나가기도 하고 구름처럼 머물러 있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니,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갑자기 슬픈 소식이 들려오는 날이면, 어느 사이 나는 깊은 상념에 잠긴다. 그리고 기억의 상자를 열고 그 속을 또 한 번 드려다 본다. ‘모두 안녕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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