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소녀가 쓰는
아주 풋풋한 사랑 이야기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
돌아앉은 돌부처. 김지하 시인이 어느 언론매체에 기고한 독백투 회고록 제목은 그랬다. 시인이자 민주투사였던 젊은 시절이나, 그 시절 동지들이 앞다퉈 한자리씩 꿰차나갈 때 또 옆길로 빠져나간 뒤 홀연히 생명(윤리)사상을 들고나와 부르짖는 초로의 요즘에도, 그의 삶은 한결같이 세속의 조심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했다. 따라서 세상의 눈치를 살피는 일 또한 좀체 없었다.
저 5월 광주의 피(80년)도 마르지 않고 따라서 눈물도 그치지 않은 전두환정권
초기(82년), 그가 남도의 한을 쥐어짜 가슴팍에 새겨파듯 써내려간 대서사시 ‘남’ 앞에다 대뜸 ‘대설’을 덧붙여 <대설, 남>이라고 이름지은 것도 김지하다웠다. 그의 해설이 걸작이었다. 소설도 있는데 대설이 없으면 쓰겄는가, 소설이 소설이라면 내것은 마땅히 대설쯤 돼야제, 대충 그런 투였다. 김지하다운 객기와 해학이 넘치는 뜻풀이는 그러나 이 세상 아무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듯한 이 돌아앉은 돌부처가 은근히 소설을 의식하는구나 하는 그림자 해석을 낳기도 했다.
소설쓰기는 그토록 어렵고 두려운 작업이라고 한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과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 월계관을 차지한 마라톤의 달인 황영조 선수가 96년3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 비하면 ‘쨉’도 안되는 국내대회(동아마라톤)를 앞두고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뛰는 거지, 요 다음에 또 뛴다 그러면 못뜁니다라고 몸을 낮췄듯이, 이병주 등 몇몇 유별난 다수확 글농사꾼들을 빼고는 소설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바로 소설가들 아닐까. 누구는 소설이 엮여지는 과정을 교감, 사랑, 태몽, 수정, 임신, 태교, 산고 등 인간의 탄생 과정과 빗대기도 한다.
북가주 문학동네를 이끌어온 소설가 신예선(사진). 올해 나이 일흔, 문단 데뷔 사십년. 그가 오랜만에 임신(?)을 했다. 아니, 몸서리친 태몽과 노심초사 태교를 거쳐 배냇아기가 벌써 고개를 내밀었다. 66년 데뷔작 <에뜨랑제여, 그대의 고향은>부터 <외로운 사육제> 등을 지나 90년대말 <무반주 발라드>를 해산한 이후 새 태몽을 꾸기까지 수삼년을 보낸 그가 모두들 잠든 한밤중에 새벽녘에 잔잔한 음악 은은한 커피를 벗삼아 통 굵은 만년필로 원고지 “앞면에 빼곡히 들어찬 사각형을 보면 숨이 콱 막히기 때문에” 뒷면에다 한자한자 꿰어온 것이 어느덧 400장가량이다.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
그의 소설이 다 그렇듯, 이름에 이국풍이 물씬하고 관통하는 코드는 사랑이다. 처음에는 작자 뜻대로 움직이다 나중에는 작자가 그 소설에 휘감겨 끌려가기도 하는 소설의 생리상 한창 뽑혀나오는 중인 지금, 그 사랑 이야기의 길이나 방향을 넘겨짚을 수는 없다. 다만, 들머리는 엊그제 끝난 월드컵 명장면에서 따온 몇가닥을 꼬아 새로 고쳤다. 이유가 있다. 일흔이 되도록 온갖 스포츠와 담쌓고 살아온 그가 우연찮게 이번 대회를 보면서 그만 월드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때문에 아주 오래된 소녀 신예선 씨의 신작소설 <심포니를 타는 허밍버드>는 월드컵 금단현상을 마저 씻어내지 못해 입맛을 쩝쩝 다시는 축구팬들에게도 별난 소설가의 별난 촉수에 닿고 감수성에 버무려진 월드컵은 어떤 형체를 띨까 궁금해질 성 싶다. 새 소설은 오는 8월 첫주부터 본보 금요일자(첫회 8월4일)에 연재된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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