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맘으로 시작해 서로 섭섭해져
불편감수해도 ‘서운하다’ ‘유세떤다’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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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에 사는 김모씨는 며칠 전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심란하다. 여름방학 동안 조카를 데리고 있으면서 어덜트 스쿨에 다니도록 도와주라는 본국 언니의 부탁 때문이다. 한달에 몇 천불 드는 어학연수보다 무료로 다닐 수 있는 어덜트 스쿨이 요즘 본국 대학생들에게 인기라는 것이다. 핏줄의 간곡한 부탁을 쉽사리 거절할 수만도 없는데 2베드의 빡빡한 살림에 딸 둘만 둔 집에서 남자조카와 함께 지낸다는 것이 그야말로 불편 감수를 불보듯 예고하고 있어 한숨이 절로 난다.
어디 이 집뿐이랴. 방학 때마다 친척뿐 아니라 사돈에 팔촌까지 연만 닿으면 ‘우리 애 좀 영어공부 시켜줘’ 하면서 청탁(?)받는 일은 미국에 산 지 10년이 안된 사람들에겐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좋은 맘으로 시작한 이 일이 속끓임, 사생활 침범, 미묘한 감정싸움, 가족간의 갈등, 섭섭함 등을 낳기도 한다.
지난 겨울 남편의 친구 딸을 두달간 데리고 있었던 플레즌힐의 남모씨는 “여기는 한국 같지 않아서 매일 등하교 라이드하는 문제가 보통 일이 아니다. 또 같이 지내다 보면 서로 생활패턴도 다르고 문화적 스타일도 맞지 않아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본국 부모한테 전화라도 해서 섭섭하게 대해준다고 할까봐, 잘 대해주라는 남편의 압력에 눈치가 보여 할말도 못하고 끙끙 앓면서 지냈다”며 “두달간 해봐야 영어가 크게 느는 것도 아닌데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와서 언어의 벽에 부딪히면 힘들어하고… 막상 본국으로 돌아갈 때는 서로 감정의 금만 생겼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밀브레에 사는 이모씨도 육촌동생을 두달간 데리고 있었지만 공치사는 어디로 가고 오히려 ‘사람이 변했다’ ‘미국에 산다고 그렇게 유세를 떨어도 되는 거냐’는 말만 들었다며 “이젠 누가 한국에서 온다고 하면 겁부터 난다”고 말했다. 더욱이 큰돈 들여 방학동안 영어연수를 보냈지만 별 효과를 못봤다는(헛돈썼다는) 친척아이 부모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까지 다친다.
미국에서 공부한 지 3년밖에 안됐지만 스탠포드대만 7번 가봤다는 유학생 이모씨는 “인터넷으로 주변 정보를 알고 온 본국 친척들이 먼저 여기 가보자, 저기도 꼭 데려가 달라고 한다”며 “미국 수학교과서를 보내달라, 영어교과서를 구해달라는 주문도 많다”고 말했다.
버클리에 사는 한 유학생 부부는 “한국에서 온 조카를 두달간 데리고 있으면서 다소 생활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아파트 매니저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며 “추가 렌트비를 지불하라고 해서 애를 먹었다”고 털어놨다.
마티네즈에 사는 장모씨는 “이번 방학에는 우리가 한국으로 나간다”며 “모처럼 친척들의 방문과 영어연수 뒷바라지 스트레스에 벗어났다”고 안도했다.
박성희 트라이밸리한인학부모회 전 회장은 “방학 때 찾아온 친척아이와 잘 지내려면 친자식처럼 야단칠 일은 야단치고 칭찬할 일은 칭찬하고 시킬 일은 시켜야 한다”며 “특별히 더 신경쓰면 서로가 불편해지기 때문에 잘 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또한 “영어 한마디 더 배우라고 등떠미는 것보다는 미국생활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더 좋다”고 덧붙였다.
<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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