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이 쌓인다. 한 해. 두 해. 세 해….
그렇게 쌓인 햇수가 올해로 37년이다. 한국일보가 달려온 세월이다. 올림픽가는 슬럼지대를 관통하는 준 하이웨이였다. 한인 상가라는 건 존재조차 없었다. 인구도 1만을 채우지 못했다. 그러던 한인타운이 이제는 전 미국 50개 주를 관통하는 거대한 공동체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200만이 넘는 코리안-아메리칸들이 오늘날 미국 땅 곳곳에서 삶의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무에서 시작됐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꿈뿐이었다. 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그 땀과 눈물의 그 결정체가 오늘의 한인타운이다. 주요 업소만 수 만개에 이른다. 의사, 변호사 등 수천 명에 이르는 전문직을 해마다 배출한다. 이민으로 세워진 미국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면서 한인들은 스스로 ‘이민 신화’를 써온 것이다.
도덕불감증 만연
성공신화의 이면에는 그러나 적지 않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내부로 눈을 돌릴 때 그 어둠의 영역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구심점이 없는 커뮤니티다’-. 주류사회에 각인된 한인사회의 모습이다. 수많은 단체가 있다. 그러나 주류사회와 가교 역할을 하는 구심적인 단체는 여전히 부재상황이다. 주류 정치인들의 한인사회에 대한 인식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고, 한인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LA시장 선거 때 주요 후보들의 잇단 타운 방문이 그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에 비교할 때 한인의 정치력은 여전히 크게 뒤진다. 그 근본 원인은 바로 구심점 부재에 있다.
한인 커뮤니티를 뒤덮고 있는 또 다른 짙은 그림자는 만연한 도덕불감증이다. 각종 탈법, 편법이 난무한다. 그 가운데 이민에서, 의료보험, 금융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기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향락업소가 넘쳐나면서 매춘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매춘 하면 한인의 주력업종으로 인식될 정도다. 일찍이 보지 못하던 현상이다. 이민자 정신의 상실이 가져온 심각한 병 증세다. 이민정신의 결여는 ‘땀의 가치’를 망각시킨다. 퇴폐주의를 불러오고 결국은 전반적인 도덕적 해이를 불러와 사회의 건전성을 무너뜨린다. 이민그룹 특유의 억척스런 생명력을 소멸케 하는 것이다.
이민정신회복 시급
한인사회는 안팎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그것은 변화에의 도전이다. 그 효과적인 응전을 위해서는 먼저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주체성 확립이 시급하다. 그럼으로써 미국 문화에 한인의 전통을 접목시켜 다양성을 더해 주는 문화 창조의 적극적 참여자가 될 수 있다. 더 시급한 일은 도덕성 회복이다. 달리 말하면 이민자 정신의 회복이다. 한인 사회의 펀더멘탈은 튼튼하다. 부를 일으켰다. 노하우도 쌓였다. 무엇보다도 주류사회를 향해 뻗어 가는 2세들이 있다.
이제 스스로 변화만 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현장이 달라져야 한다. 이웃을 격리시킨 장벽을 허물고 미국 사회를 향해 모든 것을 열어야 한다. 파이오니어 정신 회복이 바로 그 출발점이다.
한국일보가 한인사회와 함께 해온지 37돌이 되는 올해는 월드컵의 해이기도 하다. 4년전의 열광과 환희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월드컵 4강 신화는 따지고 보면 한인 이민신화와 한 가지다. ‘하면 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컵대회가 다시 열렸다. 또 한 차례 꿈을 이룰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16강이니, 8강 등 승부에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 시대의 주역으로서 세계를 품고 나가자는 것이다. 코리안-아메리칸의 긍지를 가지고 세계를 향한 제 2의 이민신화를 일구자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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