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에 찍힌 사진으로 전국적 유명세
1년후 원대복귀 불면·악몽·분노등 정신과 치료
‘PTSD환자라서…’ 경찰 지원도 좌절 방황의 길
그는 한 장의 사진으로 남은 해병이다. 해병대 하사로 이라크전에 참전한 제임스 블레이크 밀러(21)의 얼굴이 LA타임스의 종군 사진기자인 루이스 신코의 카메라에 잡힌 것은 2004년 11월10일이었다.
이라크 종군기자가 찍은 제임스 블레이크 밀러 하사의 얼굴 사진에서 일부는 용기를 읽었고, 다른 일부는 환멸을 읽었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그의 무연한 눈길에서 PTSD의 징조를 감지했다. 블레이크는 사진 찍힐 당시 “내가 살아남아 내일 뜨는 태양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집중사격으로 오도가도 못한 채 팔루자에 위치한 한 민가의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려 밤을 지새야 했던 블레이크는 자신의 무전요청을 받고 뒤늦게 출동한 미군의 아브라함 탱크가 적들의 은신처를 산산이 날려버리는 사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랜 습관대로 말보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블레이크의 모습을 바라보던 종군기자 루이스는 화약연기와 땀에 젖은 그의 얼굴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루이스가 별 생각 없이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그날로 AP통신망을 타고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100여개 신문의 지면을 장식했다.
사진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전장터에서 얼굴보기가 귀신과 마주치기 더 힘들다는 3성 장군이 ‘해병의 간판’으로 떠오른 병사가 행여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이라크에 주둔중인 미군 전체의 사기에 문제가 생긴다”며 그를 전장터에서 끌어내기 위해 팔루자로 직접 내려왔다. 그가 장군의 제의를 거절한지 며칠 후 이번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격려 편지가 시가와 함께 소포로 배달됐다.
그러나 입에 문 담배 덕분에 ‘말보르 맨’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그의 군생활은 사진이 나간지 꼭 1년만에 끝장이 났다. 같은 소대에 속한 다른 5명의 전우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전쟁후유증 스트레스질환(PTSD)의 포로가 되어버린 것.
PTSD는 이라크의 저항세력 만큼이나 끔찍했다. 점차 밤잠을 못이루는 빈도가 잦아졌고, 눈을 붙였다하면 악몽에 시달렸다. 가끔씩 전장터의 말못할 기억들이 섬광처럼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싸움을 하는 회수도 늘어났다.
2005년 켄터키주로 원대복귀해 정신과치료를 받던 그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밭이 된 루이지애나주 피해복구 작업에 동원됐다가 장난삼아 로켓발사기 소리를 흉내내던 준위를 흠씬 두들겨 팼고 이로 인해 전역명령을 받았다. 2005년 10월의 일이었다.
고향인 켄터키주의 탄광촌 조넌시 바텀으로 돌아온 그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내던 제시카와 결혼했으나 PTSD로 인해 정신적 안정을 찾지 못한 채 방황을 계속했다.
군에서 받은 훈련과 경험을 살려 경찰과 연방보안관의 꿈을 키우기도 했지만 PTSD환자는 “본인, 혹은 타인에 대한 잠재적 위험인물”로 분류돼 법집행 요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또 한번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탄광촌에서 태어나 ‘막장 인생’을 사는 것이 싫어 고교졸업과 동시에 군문을 두드렸던 그는 이라크 참전용사 3분의1을 망친 PTSD로 21세의 나이에 ‘인생의 막장’에 도달한 것이다.
‘해병의 얼굴’이었던 그는 이제 반전주의자로 변해가고 있다. 군에 자원하겠다며 최근 그를 찾아온 고향 후배에게 블레이크는 말했다. “해병으로 가라. 하지만 전투병과는 피해야 한다. 얼굴도 모르는 적에게 총격을 받고, 이해관계도 없는 인간을 죽이는게 전쟁이다. 전투병은 킬러야. 그리고 그가 죽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영혼이란다.”
<이강규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