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 ‘불허’ 공표했으나 적극 집행 안 해
최근 일부 고교 무작위 검사 실시 129개 압수
데이빗 리터는 중학생이다. 집에서 뉴욕 솔크 과학중학교까지 한 시간 걸린다. 지하철에서 내려 학교에 거의 당도하면 청바지에서 셀폰을 꺼내 워싱턴하이츠 집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그제서야 어머니 엘리자베스 리터는 마음이 놓인다. 엘리자베스에게 셀폰은 냉장고, 세탁기, 식수만큼이나 중요한 품목에 속한다. 부모와 자녀 간 셀폰의 중요성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최근 보도다.
부모 “자녀 안전 확인할 유일한 도구”
학생 “셀폰 없으면 등·하교 길 너무 심심해”
학교 “수업방해·커닝·탈의실 몰래 촬영”
셀폰은 대도시에 사는 부모들에게 탯줄과도 같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는 자녀의 안전을 확인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도구이다. 자녀가 낮선 동네를 다닐 때도 그 쓰임새가 짭짤하다. 뉴욕시 각급교에서는 셀폰 사용이 금지된 지 수년 됐지만 수업시간에 셀폰이 울리지 않는 한 굳이 셀폰 소지 여부를 점검하지 않았다. 대다수 학교에 금속탐지기가 없으니 등하교 때 적발될 일도 없다. 군대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적용되는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 정책이 적용돼온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 시 당국이 총기를 적발하기 위해 일제 단속을 펴는 와중에 셀폰이 대거 압수됐다. 한 학교에서만 학생들이 129개의 셀폰을 빼앗겼다. 일부 학교 교장들은 학부모 집에 편지를 보내 셀폰을 갖고 등교하는 게 금지돼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부모들은 “편리한 셀폰을 왜 못 쓰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이런저런 행사들이 많고 자녀들의 과외활동이 복잡하게 짜여 있는 상황에서 자녀와의 소통 수단인 셀폰을 사용하지 못 하게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가뜩이나 삭막한 뉴욕의 도심 생활에 그나마 가족들의 끈끈한 정을 나눌 대화통로인 셀폰을 박대하는 것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솔크 과학중학교 6학년인 이브 톰슨은 방과 후, 버스 승차 후, 하차 후, 집에 거의 다 도착해서 일일이 어머니에게 전화한다. 이브의 어머니는 “딸이 학교에서 끝나자마자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야 안심이 된다”며 “범죄자가 순진한 학생들을 노리고 있는데 셀폰 사용을 불허하면 어떻게 마음을 놓고 생활할 수 있느냐”며 따졌다.
사실 뉴욕에서 셀폰을 학교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 학생은 거의 없다는 게 학부모들의 말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둔 정신치료사 모이라 케네디는 셀폰 사용 불허에 대해 “낮에 자녀들과 통화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을 막으려는 것은 부모들의 걱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뉴욕 경찰은 브루클린의 에이콘 고교에서 무작위 소지품 검사를 했다. 셀폰 129개, CD플레이어 10개, 아이팟 2개를 압수했다. 휴지통에서 박스커터와 칼도 발견했다. 한 학생은 검사하는 것을 보고 도망했다. 당시 이 학생은 마리화나를 소지했다. 물론 전자기기는 모두 본인에게 반환됐다.
이 학교 조엘 클라인 교장은 셀폰 불허를 정당화했다. 학생들이 셀폰을 이용해 시험 때 커닝하고 탈의실에서 몰래 촬영을 하며, 싸움을 벌이려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셀폰 불허 조치로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교육적 차원에서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당국의 결정에 몹시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댄 이유는 부모들의 이유와는 달랐다. 랩 스쿨에 다니는 메이 촘(14)은 “셀폰이 없으면 공허하다. 학교까지 오는데 음악을 듣지 못하면 너무 심심하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노아 베네즈라(18)는 “셀폰은 나의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했다. 몇 블록 떨어진 곳의 패션 고등학교 학생인 아요니 워버튼(17)는 비상상황에서 셀폰이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에이콘 고교의 영어교사 리사 밀러는 “셀폰은 수업을 방핼 뿐이며 진정 비상시에는 부모가 학교로 전화하면 된다”며 셀폰 사용 불허조치를 옹호했다. 그러나 부모들은 이러한 주장에 심드렁해 했다. 일부 학교장들도 압수된 셀폰은 본인에게 반환된다는 말과 함께 부모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유화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퀸즈에 사는 제인 라이프는 “열두살인 딸 니키가 친구들과 걸어서 집에 온다. 그러나 만일 같이 걸어 다니는 친구들이 사정이 생겨 동행하지 못할 경우 니키가 셀폰으로 전화를 해 온다”고 말하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박봉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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