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상황에 어떻게 했을까? 무력감이…
나는 영화 ‘유나이티드 93’(United 93)의 시사회에 초대를 받고 이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해 기대와 두려움의 상반된 감정을 느꼈다. 영화비평가로서 메이저가 만든 미국의 최대 비극을 처음 극화한 영화를 본다는 기대와 함께 교통사고를 보고 그저 못 지나가는 ‘고무 목’의 호기심이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또 한편으로 인간의 떼죽음을 엿본다는 죄책감과 함께 살아있는 내가 불과 4년여 전에 일어난 이 참사의 재현을 본다는 사실이 마치 신의 운명적 예견에 동조나 하는 것같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미국 사는 사람으로서 사건의 흔적이 아직도 너무 강렬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비단 나만이 느낀 것은 아닌 듯하다. ‘유나이티드 93’의 개봉을 앞두고 미국에서는 영화가 너무 빨리 만들어진 것은 아니냐는 문제를 놓고 온갖 매스컴이 열띤 논란을 벌였다. ‘이즈 잇 투 얼리?’(Is it too early?)라는 명제와 함께 거론된 것이 ‘당신은 준비가 되었는가?’(Are you ready?)이다. 즉 당신은 이 영화를 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영화를 보고 난 나의 대답은 결코 너무 빠르지도 않고 또 많은 사람들이 봐야만 할 영화라는 것이다. 전 국가적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있었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9.11테러는 이미 책과 신문과 잡지에서 수없이 많이 다루어졌고 테러리스트 자카리아스 무사위 재판에서는 비극의 여객기 블랙박스 녹음 내용도 공개됐다.
사람들이 이 사건의 재현을 얼마든지 볼 용의가 있다는 사실은 이를 다룬 두 TV 영화의 높은 시청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나이티드 93’사건을 극화한 A&E의 ‘제93편’(Flight 93)은 이 방송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보였고 디스커버리 채널이 역시 같은 사건을 다룬 ‘반격한 승객들’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왜 영화로는 볼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아직도 미국인들은 이 비극을 영화로 보기에는 석연치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나이티드 93’의 개봉을 앞두고 USA투데이와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사대상 1,006명중 38%가 영화를 볼 용의가 있다고 답한 반면 60%는 관람치 않겠다고 답했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이런 사실을 잘 알아 영화를 만들기 전 희생자 가족들을 일일이 만나 협조와 자문을 구했고 그들의 전폭적 지지 하에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을 본 대부분의 가족이 영화에 만족했다고 제작사인 유니버설은 밝혔다. 유니버설측은 이 영화의 마케팅이 보통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영화를 25일 시작된 뉴욕의 트라이베카 영화제 개봉작으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트라이베카 영화제는 로버트 드 니로가 9.11이후 맨해턴 재건을 위해 설립한 영화제로 비극의 현장에서 가까운 트라이베카 구역에서 열린다. 유니버설은 또 영화(제작비 1,500만달러)의 개봉 첫 주말 수입의 10%를 ‘93편 전국 추모기금’에 기증하기로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내가 저 승객들 중 한 사람이었다면 어쨌을까’하는 물음에 파묻혔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무기력감과 절망감과 참담함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당신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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