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C 영화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알렉스 고씨가 영화 ‘폭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관 기자〉
■ 기획특집
USC 대학원 알렉스 고씨 기록영화‘폭동’완성
역사의 부재는 삶의 철학의 빈곤을 낳는다. 그렇게 때문에 “누군가는 우리의 역사를 전달해야 하지 않겠냐”며 4.29폭동을 영상으로 담는 USC영화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폭동 피해의 아들’알렉스 고(29)씨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26분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1992년 4월29일, 그날을 고씨는 잊을 수 없다. 3가와 카탈리나에서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 고형규(60)씨가 “나간 후 못 돌아올 수도 있다”며 총을 들고 떠난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기 때문이다. 고씨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한국말로 한이라고 해야 하나요?”라며 한으로 변해버린 당시의 충격을 털어 놓았다.
폭동이 발생한 지 14년이 흘렀지만 고씨는 ‘폭동’(POKDONG)이란 제목의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 가족과 4.29에 대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땀으로 일군 가게가 불타버린 당시의 아픔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고씨의 아버지는 “별로 말 하고 싶지 않다”며 아들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지만 역사를 써내려가고 싶다는 아들의 요청에 결국 담담히 당시의 상황을 털어 놓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폭동’은 고씨의 졸업 작품이다. 고씨는 폭동을 겪은 이민자들의 삶을 그려내고 싶다는 욕심이 영화 감독으로까지 발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USC 영화학과의 아만다 포프 교수는 “그 어떤 작품보다 영화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며 “다른 문화에 대한 소통을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고씨의 영화를 평했다.
영화는 폭동의 피해자인 고씨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리고 있다. 폭동이 발생하며 겪었던 가족의 좌절감과 가족간 대화의 단절로 이어진 상흔들, 가슴 속 응어리를 안고 살아간 14년의 기억들이 고씨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으로 전해진다. 다큐멘터리 영화인만큼 당시의 끔찍한 방화와 폭력의 현장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한인에 의한 한인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감독인 고씨를 중심으로 이 영화에는 흑인, 백인, 히스패닉, 중국계 등 기타 아시안 동료들이 스텝으로 참여했다. 프로듀서인 자렛 코너웨인은 “폭동은 인종간 문제가 아닌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저항이 불러 온 불상사”라며 미디어가 만들어낸 폭동의 허상을 영화가 짚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고씨의 어머니인 고해숙(56)씨는 폭동 당시에 대한 증언을 하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부분의 폭동 피해자처럼 고씨의 어머니 또한 할 말은 많지만 그 참상을 언어로 만들어내며 겪어야 할 아픔이 크기 때문이다. 고씨는 “14년 동안 가슴 속에 쌓아 놓았던 아픔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한인들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제작하며 고씨는 한인 사회의 기록 부재를 절감했다고 한다. 고씨는 “폭동에 대한 기록을 찾으려고 해도 한인보다 오히려 미국 사람들이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더라”며 한인들의 발자취가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폭동이 휩쓸고 간 고씨 아버지의 가게는 고씨의 삼촌이 이어 받아 운영 중이다.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일궈야하는 등짐을 짊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고씨의 영화 ‘폭동’은 5월6일 저녁 7시30분 USC 노리스 극장에서 무료로 공개 상영된다.
<이석호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