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손 볼 곳이 생겨 한인 플러머를 불렀다. 방문한 플러머는 60이 넘어 보였다. 그런데 그 분은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피아노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아이구, 피아노를 치시는군요’ ‘아니오. 딸이 치던 겁니다’ ‘그래요? 제가 피아노를 치거든요. 일 끝나면 한 곡 칠 테니 들어보시겠어요?’ 그러더니 무엇이 고장인가 묻기에 앞서 자신이 피아노 배우게 된 동기부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로 외출해야 했던 나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이야기를 자르고 부엌으로 안내했다. 일을 하면서 그는 다시 피아노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보기에 그는 빨리 일을 끝내고 피아노를 치고 싶어 안달이었다.
유일한 청중인 나를 곁에 세워놓고 드디어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퉁퉁한 체구에 검댕이 묻은 작업복과 투박한 손. 그러나 표정만은 새털구름 위에 올라탄 듯 황홀하게, 조용필의 ‘친구여’를 열심히 쳤다.
“전에는 일이 없으면 고객들 전화를 기다리며 초조하기만 했죠. 지금은 그 동안 피아노를 치니 행복합니다”라며 한 곡 더 치고 싶은 표정이었고 나도 한 곡쯤은 더 들어줄 용의가 있었으나 ‘피아니스트 플러머’가 올 줄 모르고 다른 약속을 해놓았으니.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지난 한 주였다. 잘 살기 위해 미국에 온 우리들이 아내를, 남편을, 자식들을 칼로 찌르고, 불지르고, 총격살해하고 그리고 자살했다.
여기 저기서 처방책이 나온다. 교회의 역할 재정비, 아버지 교육의 필요성, 상담에 대한 편견 불식, 드디어는 ‘부인들이 잘 해주었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부인 책임론이 남성들을 중심으로 등장한다.
사건들은 한인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도 그런 가능성이 있지 않나 불안하다.
한 채권자는 ‘나도 돈을 받아내야 할 사정인데, 빚 독촉해서 상대방 부부싸움을 유발, 큰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요즘은 돈 달란 말도 못하겠다’고 한다.
이들 비극에서 애써 한가지 위안을 삼을 수 있다면 한인들이 나름대로 자성하고 타인에 대한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쓰게 된 점이라고 할까.
자식들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 이 참극 앞에서 제3자가 함부로 원인을 분석하고 그들을 매도할 수는 없다.
사건들이 잘 나가던 사업의 실패 등과 연관 있음을 볼 때 가장 큰 책임은 물질적 풍요를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한인 커뮤니티의 왜곡된 가치관이다.
가까운 예로 웬만한 한인식당 주차장은 고급 사교클럽 주차장이나 고급 차 딜러로 착각할 정도다. LA이건 OC이건 한인회장 선거에서도 후보가 돈을 많이 내겠다면 일단 환영이다.
돈 많이 벌어 타운이나 교회에서 과시하고 대접받는 것이 우리의 최고 가치일까. 물질적인 부는 뜬구름 같이 흘러감을 개개인이 매일 경험하고 있고 4.29폭동, 가까이는 카트리나 재해를 통해서도 직·간접 경험했다.
호화로운 집, 자랑스런 자식은 물론 행복을 준다. 그러나 그 행복의 지속 여부는 내 의지만으로 안 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물질 외의 것에서 행복과 삶의 가치를 찾는 가치관의 재정비가 있어야 개인도, 커뮤니티도 좀 더 건강해질 것이다.
김현숙 OC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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