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 라브레아 아파트 관리회사에서 주민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ESL클래스. 7일 오전 한인 주부들이 아파트 다목적실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서준영 기자>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 본 팍 라브레아 전경.
아파트 숲속 2천 한인 특별촌 형성
LA한인타운 서쪽에 위치한 또 다른 한인타운 팍라브레아 아파트 단지.
주재원과 유학생의 입 소문을 시작으로 한인 입주자가 시나브로 늘기 시작해 이제는 전체 주민 네 명중 한 명이 한인일 정도로 많은 한인이 살고 있다. 160에이커의 넓은 부지에 4,000여세대 1만 여명이 어울려 살고 있는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 팍라브레아에는 줄잡아 2,000여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는 셈.
미국에서도 찾기 힘든 초대형 고층 아파트 단지인 팍 라브레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대부분 이 곳에서의 삶에 큰 만족을 나타내고 있다. 팍라브레아에 한인이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한인타운과 가까우면서도 주거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깨끗한 환경, 좋은 학군, 안전한 치안, 친절한 이웃, 다양한 부대시설 등 웬만한 서비스는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단지 내에서 다 해결할 수 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지난 몇 년 사이 렌트비가 50% 정도 급등해 1베드에 1,500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30∼40대 전문직 종사자, 자영업자, 주재원, 유학생 가족의 거주비율이 높다는 점도 팍라브레아의 특징 중 하나다.
비슷한 또래의 한인들이 모여 살다 보니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아파트 안에 극장, 카페, 비디오 가게, 수영장, 체력단련장,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는 주민들을 위한 신문도 발행될 정도니 도시 속의 또 다른 도시라고 부를 만 하다.
팍라브레아 한인들
팍 라브레아의 한인들은 크게 세 분류로 나눠볼 수 있다. 한인타운에 일터가 있어 출퇴근 트래픽을 피하면서 자녀교육도 챙기려는 회사원과 자영업자, 한인사회와 주류사회의 장점만 배우려는 주재원과 유학생, 그리고 이런 자녀들을 둔 은퇴한 부모들. 여명이 밝기 전인 새벽5시 다정하게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로부터 주말 오후 자녀 생일 파티를 위해 바비큐장을 점령하는 30대 부부들과 평일 오전 영어를 배우기에 여념이 없는 아줌마 부대에 이르기까지. 팍 라브레아 한인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은 왜 이 곳이 한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지 잘 설명해 준다.
영어·수영교실등 무료 운영 호평
안전해서… 주류사회 배우려… 교육위해…
ESL 클래스의 한인들
전업주부 유학생 노인 등
다양한 민족 함께 어울려
아기와 함께 온 엄마, 여행 온 학생, 은퇴한 사업가 등 다양한 배경의 주민들이었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는 하나였다.
7일 오전 9시께 팍 라브레아 단지 35동 지하에 위치한 ‘어덜트 에듀케이션 센터’에서 열린 ESL 클래스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20여명의 남녀노소 학생들이 모여 영어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한인뿐만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한자리에 모여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모습은 여러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팍 라브레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ESL 클래스 영어강사로 11년째 활동중이라는 루스 그레고리(58)는 “한국인들은 잠자는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모범생 민족”이라며 ESL 클래스의 한인들을 평가했다. 그는 “특히 나이가 많은 노인들과 전업 주부들이 클래스를 많이 찾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고 말하고 “이들은 어린 학생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클래스의 김교영(65)씨는 팍 라브레아 주민이 아니다. 그는 신문광고를 보고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팍 라브레아를 찾은 케이스. 그는 “이렇게 영어공부까지 무료로 시켜주는 아파트가 어디 있느냐”며 칭찬하기에 바빴다. LA에 27년째 살고 있다는 김씨는 “팍 라브레아는 편의시설이 잘 돼있어 처음 미국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고 말했다.
LA에 사는 친척 언니를 방문한 최나정(22·39동 거주)씨는 “밖에서는 한 달에 수백달러씩 하는 영어수업을 단지 내서 무료로 들을 수 있고 밤에도 안심하고 산책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한 달만에 팍라브레아 매니아가 됐다”며 웃었다.
오후 클래스의 최애경(62·46동 거주)씨는 74년 도미해 아이들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정신없이 살아왔다. 최씨는 “늙어서 공부하는 것이 무슨 자랑”이냐며 수줍어했으나 수업이 시작되자 수줍은 모습은 간데 없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최씨는 “항상 영어 공부에 대한 생각은 있었으나 바쁘게 살다보니 이제 와서야 시작했다”고 말하고 “하지만 뭔가 배운다는 즐거움에 요즘 사는 맛이 난다”며 즐거워했다. 최씨의 남편인 최종길(69)씨는 고급반인 오후 클래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팍 라브레아 ESL 클래스는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수준에 따라 오전(고급반) 오후(초급반)로 나눠 무료로 운영중이다. 이밖에도 팍 라브레아는 노인들을 위한 운동교실, 수영교실, 미술교실, 도자기교실 등 총 20여개의 무료 교육과정을 운영해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5일 오후 자녀들이 단지 내 비행기 만들기 수업을 듣는 동안 엄마들이 커슨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즐기며 일요일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맛·분위기 좋은 ‘사랑방’… 아파트 명소로
한인 운영 카페
팍 라브레아의 사랑방인 가든 카페와 커슨 카페. 한인은 물론 입맛 까다로운 백인 노인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는 두 카페의 주인은 한인 제시카 김씨다. 김 사장은 가든 카페만 운영했었는데, 2003년 다목적센터가 문을 열 때 관리회사로부터 커슨 카페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아 사업을 확장했다.
주민이기도 한 김 사장은 “손님들이 다 이웃이어서 친하다는 게 아파트 단지 내 비즈니스의 장점”이라며 “가족의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는 게 좋은 평가를 받는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성과 함께 최상급 유기농 재료만 사용하는 것도 가든 카페와 커슨 카페가 팍 라브레아의 명소로 자리잡은 이유다.
김 사장은 “커피를 중심으로 판매하는 가든 카페는 한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았고, 고급스런 카페테리아를 지향하는 커슨 카페는 백인주민들이 많이 찾는다”며 “손님들 모두 친절하고 가족 같아 좋다”고 말했다.
48동에 거주하는 정유진씨(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딸 이바나(7세·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 파티용 풍선을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파티 파티 열렸네~
바비큐 파티 열렸네
휴일이면 앞마당서 다양한 인종과 친교
일요일 오후 팍라브레아 내 바비큐 플레이스에서는 형형색색의 풍선으로 장식하고 파티를 벌이는 한인들을 자주 만난다. 물론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인 만큼 한인뿐만 아니라 백인, 인도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해 파티를 즐기는 친교실 역할을 해내는 곳이다.
지난 5일 낮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한 베이비샤워 파티가 한창인 이곳에는 산모와 아기를 위해 크고 작은 선물을 들고 온 한인들의 웃음꽃이 여기저기서 만발했다.
두달 뒤 출산예정인 산모와 친구사이라는 정유진(34·48동 거주)씨는 “파티에 늦어 뒷정리나 도와줄 요량으로 왔다”며 멋쩍어했다.
팍라브레아에 3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정씨는 “팍라브레아는 LA시내 한복판에서 한적한 교외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인근에 행콕팍 초등학교까지 있어 자녀교육의 최적지”라며 팍라브레아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노플레이스 대표 데이빗 신(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아이들에게 비행기 디자인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무료 모형항공기 교실 인기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날려
단지 내 잔디밭에서 열리는 어린이 대상 무료 모형 항공기 클래스는 최고 인기. 아이들은 직접 디자인한 비행기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한쪽에서는 이미 비행기를 완성한 아이들이 시험비행에 나서며 신나 한다.
이 클래스는 RC 모형항공기 디자인 전문회사인 나노플레이스(대표 데이빗 신)가 자원봉사를 자청해 1년 전 시작됐다. 나노플레이스의 공동대표이자 강사로 활동중인 박연숙(33)씨는 “팍 라브레아의 잔디밭은 비행기를 만들고 날리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말하고 “팍 라브레아에 사는 아이들도 있지만 클래스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밸리에서 오는 아이들도 있다”며 즐거워했다.
박 강사 옆에게 계속 장난을 걸던 김재일(11·37동 거주)군은 “비행기 만드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며 직접 만든 비행기를 자랑했다. 과학자가 꿈이라는 김군은 “집 바로 앞에 잔디밭이 있어 비행기 날리기에 좋아 친구들도 자주 놀러온다”고 말했다.
“드라마·쇼보다 영화 잘나가요”
단지내 비디오샵 하루 300여개 대여
34동 지하에 위치한 타워한국비디오(대표 허재원)에는 최신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가득했다.
개업한지 4개월 째라는 허재원(40·48동 거주)씨는 “일반적으로 한인들은 드라마나 쇼프로를 많이 보는데 팍라브레아 주민들은 영화를 선호한다”며 “팍라브레아 주민 수준이 높아서 그런가 보다”며 농담을 던졌다.
허씨는 주민들이 영화를 많이 찾는다는 점에 착안, 가게를 둘로 나눠 한쪽은 드라마 중심의 한국 비디오를, 다른 한쪽은 영화 중심의 외국 비디오를 취급하고 있다. 허씨는 “팍라브레아 주민들은 무조건 한글 자막이 있는 비디오를 찾기보다는 자막 없는 원판을 먼저 본 후 완전히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 한글자막이 있는 비디오를 찾는다”고 전했다. 그는 “하루평균 300개 가량 대여되는데 타운 내 비디오점이 평균 400∼500개씩 대여하는 것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며 “하지만 가깝다 보니 반납이 빠른 편이라 영업하기 좋다”고 귀띔했다.
“이 맛에 여기 살아요” 베스트 5
“한번 팍 라브레아에서 살아보세요. 다른 데선 못 살아요” 단지에서 만난 한인들은 하나같이 팍라브레아 매니아들이었다. 주민들의 입으로 직접 들어보는 팍 라브레아 장점 베스트 5.
▲최초강(44·48동 거주)-팍 라브레아는 안전해서 좋아요. 어디 LA 시내에 밤에 맘놓고 다닐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여긴 경비원이 24시간 순찰을 돌아주니 좋습니다.
▲곽미정(30·47동 거주)-팍 라브레아는 공원이 최고입니다. 어린이들이 맘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곳은 많지 않죠.
▲김성환(60·39동 거주)-무료 교육 프로그램이 장점이죠. 관심 따라 골라서 공부하며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닐까요.
▲조영숙(35·48동 거주)-관리는 LA 최고 수준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관리사무소에 전화 한통화면 다 해결되죠.
▲최선화(55·46동 거주)-팍 라브레아에는 도서관, 영화관, 카페, 미용실 등 없는 게 없어요. 모든 볼일을 단지 안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글 이의헌·사진 신효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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