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예배를 집례하다 보면 각기 다른 계층의 인생 면면들을 잘 볼 수가 있습니다. 어느 분의 인생은 단명하셨지만 굵고 짧아서 큰 족적을 남깁니다. 그런 분의 삶을 엿보면 100m 달리기를 10초대에 끊어버린 프로 같은 삶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나 일찍 타계해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어떤 분은 마라톤 같은 인생을 사신 것을 봅니다. 얼굴 주름살의 깊이만큼 패인 질곡의 오랜 세월을 아픔 속에서 살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가슴으로 세파를 끌어안고 외롭고 긴 마라톤을 잘도 참으면서 사신 분입니다. 이러한 죽은 자들의 감동
이 넘치는 인간 드라마를 보면서 살아 있는 자의 인생을 재삼 음미하게 됩니다.
가장 기쁘고 소망이 넘치는 인생은 100m 단거리 주자도 아니요, 홀로 자신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마라톤 선수도 아닙니다. 그것은 1,500m 릴레이, 즉 이어달리기를 하신 분의 인생입니다. 인생은 계주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쳐서 이제 끝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달린 후에
다음 주자에게 바톤을 잘 넘겨주어야 합니다.
나의 대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성공하였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나의 아름다운 인생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나는 사라지지만 나의 자식이 내가 물려준 바톤을 이어받아 그의 인생을 힘차게 달려가도록 만드는 릴레이 경주입니다. 나의 자식은 자신의 자식에게,
그의 자식은 또 그의 자식에게 계속 물려주는 계주입니다. 바톤은 자식에게만 물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길을 달려간 후에 제자에게, 부하에게, 사랑하는 멘토리 들에게 넘겨줍니다. 나는 사라지지만 그들은 새롭게 뛰기 시작하는 인생은 계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틴 뒤 부활 승천하여 사라지시면서 모든 사역의 바톤을 제자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뛰었고, 그 제자들의 제자가 뛰었고, 오늘도 그 제자들이 계속 뛰고 있습니다. 인생은 릴레이 경주입니다.
나의 대에 승부를 걸어 내 이름을 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단거리 경주처럼 달리다가 심장이 파열될 지도 모릅니다. 우승 트로피를 받아놓고 성공했다고 아무리 외쳐도 며칠 후 트로피는 고물상에 넘겨지는 무의미한 것이 될 지도 모릅니다. 나 혼자 외롭게 싸우면서 인간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며칠이면 잊혀질 것입니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는 것입니다. 단거리 주자나 마라톤 주자로 살지 말고, 릴레이 경주의 바톤을 들고 뛰는 주자로 살아갑시다. 인생은 이어달리기 경주입니다. 오늘도 에셀 나무를 심으며…
글 : 호성기 필라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
삽화 : 오지연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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