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여행자들에게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은 바로 시차적응이다. 시간대가 다른 지역을 왔다갔다하다보니 밤낮이 바뀌어 피로가 누적되기 일쑤다.
텍사스 샌안토니오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크리스토퍼 로츠는 항공여행을 자주한다. 이제는 항공여행에 관한 한 과학자 수준이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여행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일가견을 갖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호에서 로츠의 노하우를 소개했다. 로츠는 대서양 횡단 비행기를 타게 될 경우, 탑승 3일 전부터 준비에 들어간다. 평소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유럽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탑승 당일에는 오후 2시에 저녁을 먹는다. 저녁이라기보다 하루의 마지막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 때가 바로 유럽에서는 저녁시간이기 때문이다.
수일 전부터 취침·기상 시간 목적지에 맞춰
처방 수면제 앰비엔·소나타 등 비교적 안전
호르몬 멜라토닌 애용불구 과학적 근거없어
기내에서 ‘딴 일’ 삼가고 최대한 휴식취해야
시차부적응, 겁먹으면 긴장 고조돼 더 악화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간다. 저녁 늦은 시간에 출발하는 항공기에 오른다. 좌석에 앉으면 미리 처방받아 준비해 간 수면제 앰비언(Ambien)을 먹는다.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한다. 다소 비좁지만 어떻게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잠을 청한다.
눈을 붙인 뒤 잠에서 깨어나면 기내 아침 식사가 나온다. 유럽시간에 맞춘 아침식사다. 아침을 먹고, 얼마 후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린다. 공항을 빠져나와 바로 비즈니스에 들어간다. 물론 피로해서 졸든가 업무에 소홀해지는 일은 없다고 한다.
국제항공여행자들에게 시차적응은 난제 중의 난제다. 특히 중요한 비즈니스가 걸려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조바심을 낳게 한다. 인터넷에서도 시차적응과 관련한 조언들이 수두룩하다. 또 편안한 여행이 되는데 도움이 되는 물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다. 실제 여행자들은 이러한 물건들을 사용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은 바로 변호사 로츠의 아이디어다. 비행기 안에서 가능한 많은 휴식을 취하고 도착지의 시간에 맞추어 행동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여행자들이 비행기 안에서 소음을 견디며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상당수 여행자들이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약에 의존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현지 시간대에 적응하려면 탑승 며칠 전부터 목적지 시간대에 맞추어 취침 시간을 다소 변경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런던에서 관리컨설턴트로 일하는 저스틴 샤샤(29)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이색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중년 여성들이 이상한 알약을 주고 받는 것이었다. 그 중 한 여성이 저스틴에게 다가와 “잠을 잘 자면서 여행할 수 있는 약”이라며 소개해 몇 알 샀다고 했다. 이 약을 먹고 무리 없이 여행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면제를 마구 남용하면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앰비언이나 소나타(Sonata)와 같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앰비언은 6시간, 소나타는 4시간 동안 수면효과를 낸다. 그러나 다른 약들은 그 이상의 효과를 내면서 오히려 부작용을 안겨준다는 지적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정신이 몽롱해 일에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앰비언이나 소나타도 여행 첫 이틀 밤에 복용하는 게 좋다고 했다.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조언이다.
하지만 여행자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전문가들의 조언과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지난해 여름 여행자 5,000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앰비언을 복용하는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또 처방 없이 사는 약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10%였다. 그리고 21%는 바이오리듬을 조절하는 호르몬 멜라토닌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자들의 멜라토닌 사용 경험담과 달리, 전문가들은 멜라토닌이 수면을 돕는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가짜 약(placebo)과 별 다른 효과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헌데 실제 이를 사용한 사람들은 어찌 됐든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시카고 러시 의대의 차메인 이스트먼 박사는 임상실험을 통해, 취침 5시간 전 멜라토닌을 소량 사용해 수면 효과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했다.
통상 여행자가 하나의 시간대 변화에 적응하는데 24시간이 걸린다. LA에서 런던에 가면 적어도 8일이 지나야 현지 적응이 된다는 계산이다. 나이가 들수록 적응이 더 어렵다.
LA에서 영화 제작을 하는 이스라엘 배론은 매달 두 차례 버진 애틀랜틱 항공을 이용해 런던에 간다. 배론은 시차문제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는 1등석을 탄다. 편안하게 드러누워 긴장을 푼다. 기내 마사지도 절대 빼놓지 않고 받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다”고 한다.
아마 배론에게는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석에 앉아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하는 대다수 여행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말처럼 쉽지 않다. 배론처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비행시간 내내 적절한 휴식을 취하면서 ‘할일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면 그나마 안전한 대안에 의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앰비언을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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