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온다. 설이 되면 항상 커다란 가방을 꺼내어 집안 식구들의 옷, 잡다한 생필품, 항상 무겁게 들고 가지만 소득 없는 책들을 가방에 담는다. 시댁으로의 명절 대이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올해도 변함없이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겠지만 짐을 챙기는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이런 변화는 지난해 설에 있었던 새로운 경험 때문이다.
지난해 설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짐을 쌌다. 하지만 동행자와 목적지는 예년과 달랐다. 가족이 아닌 동료와 시댁이 아닌 미국을 향해 출발했다. 아무리 시댁식구가 잘해 주어도 ‘시’자 붙은 사람은 어려운 법이고 한국 며느리들이 겪는다는 명절 증후군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약간의 설렘이 나를 들뜨게 했다.
LA 일대를 돌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혹은 한인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여성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바쁜 열아홉 분의 여성활동가들이 선뜻 장시간의 인터뷰를 허락해 주 셨다. 지금도 생각하면 감사하고 죄송스럽다.
날이 갈수록 내가 만난 여성들에게 뭔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 일에 대한 열정과 적극성, 그리고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많은 재미 한인여성들이 미국에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가 삶에 있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여성활동가들은 자신의 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일상에 대한 긍정적 사고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적극성을 유도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것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게 만든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자 망설임 없이 직업전선에 뛰어든 여성, 자신의 지식수준이 낮고 영어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자 주저하지 않고 주경야독을 선택했던 여성, 남존여비의 한국적 사고가 팽배해 있는 재미 한인사회에서 지혜롭게 행동하여 성공한 여성들이 재미한인여성계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한 여성, 몸은 하나이지만 5~6개의 활동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맹렬 여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지만 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어머니, 그리고 한민족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한인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 한인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여성, 이런 여성들이 재미한인여성계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재미한인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다양한 사회변화를 경험하면서 재외한인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가는 중심세력이 되어 왔다. 여성의 교육수준이 향상되고, 이민 후 경제활동 참여가 증가하면서 재미한인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지고 있다. 앞으로는 여성들의 사고나 행동이 재미한인사회의 발전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 요인이 될 것 이다.
미국에서 만난 여성활동가들은 재미한인여성의 공동체적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한인여성 스스로의 자기개발을 위한 노력을 들었다. 많은 여성들이 주어진 상황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지만 정작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사회참여가 어렵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만을 이야기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여성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현실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심사숙고하고,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성의 이러한 변화는 결국 자녀를 바른길로 이끄는 통로가 될 것이며 나아가 재미한인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 그리고 적극적인 대처, 다가오는 설이 예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이선미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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