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인용하여 자신의 속내나 사회현상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대학 교수들은 지난 연말 ‘상화하택(上火下澤 위에는 불 아래는 못이란 뜻으로 분열 현상을 지칭)’을, 신년 초에는 ‘약팽소선(若烹小鮮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을 꼽으면서 사자성어의 유행을 선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신년인사회에서 ‘선흉후길(先凶後吉 처음은 나빠도 나중엔 좋아진다)’을 내놓았고, 이에 질세라 정재계 인사들도 앞 다투어 사자성어 하나씩 운을 떼며 유행에 동조하고 있다.
한국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황우석 박사도 기자회견 말미에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한다)’이란 사자성어를 써가며 지나친 자신의 학문적 열정을 탓하기도 했다.
한자(漢字)와 동떨어져 살고 있는 해외 동포로서는 듣도 보도 못하던 사자성어들의 현란한 향연에 머리가 아찔할 뿐이다.
그러나 기왕지사 유행이라면 기자도 하와이 한인사회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후죽순(雨後竹筍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일어남을 비유)’과 ‘유명무실(有名無實 이름뿐이고 실상이 없다)’의 사자성어를 선택하고 싶다.
새해 들어 각 한인단체들은 제각기 신년 포부를 밝히면서 힘찬 전진을 다짐하고 있다. 대다수 한인단체들은 이민 100주년을 거치면서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한인사회의 위상과 정치력 신장, 그리고 한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단체들의 헌신과 열정은 향후 한인사회 발전의 주요 성장 동력이 될 것이 틀림없다.
반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단체와 오히려 사라지는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나은 단체도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지난 11일 한인회 사무실에서 열렸던 민주당 중진의원들과 한인대표들과의 면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4선 의원인 한인 1.5세 실비아 룩 장 주하원의원은 그동안 한인사회를 위해 주정부 차원의 지원을 해주고 싶어도 단체의 대표성이 문제가 돼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며 우회적으로 한인 단체의 난립과 대표성 부족을 지적했다.
기실 한인 단체가 많이 생겨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 봉사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와이 한인들의 인구 비율에 비해 너무 많은 한인 단체들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심지어 어떤 단체는 명패만 걸어 놓고 일년 내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 한인사회의 갈등과 반목의 불씨가 되기도 하고 어떤 단체는 거창한 단체명과는 달리 일년에 서너번 모여 회식 모임이나 갖는 친목회 수준의 단체도 있다.
지금 우리는 구습과 구태에 젖어 한가롭게 옛 시절을 떠올리며 세월을 보내기엔 너무도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 한인사회에 큰 획을 남긴 단체라도 현재 유명무실한 단체에 불과하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순리에 역행하며 가느다란 생명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한인사회를 위해서는 백해무익한 것일 것이다.
2006년 올해는 한인사회를 위해 필요한 단체들만이 살아 마음껏 숨쉴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원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후죽순’과 ‘유명무실’이라는 사자성어가 한인 단체들에게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말로 기억되길 바라는 바이다.
<정상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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