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말연시 들뜬 분위기 속 시카고 한인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 벌어졌다. 서버브에 거주하는 50대 한인 남성이 가정폭력 신고와 관련, 자신을 조사하러 온 경찰과 대치 끝에 방화 및 자해를 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올해초에도 한인여서인 구은주씨가 백인 남편에게서 망치로 머리를 맞아 사망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씨 역시 가정폭력의 희생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카고 한인사회가 가정폭력으로 속깊이 멍들어 가고 있다. 이에 본보는 3회에 걸친 시리즈물을 통해 한인사회 가정폭력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진단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시리즈 순서>
1. 가정폭력 언제까지 두고 볼건가
2. 가정폭력에 대한 잘못된 상식
3. 쉬쉬말고 전문가에게 알려야
부부간이고 남녀간이고 부모와 자식간이고, 사람간에는 누구나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갈등 자체는 범죄가 아니지만, 해결할 때 무력을 쓰면 범죄가 된다. 지난달 벌어진 이모씨 사건 역시 부부간의 갈등이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씨를 아는 한인들에 따르면 평소 조용한 성격의 그는 경제적 문제를 두고 부인과 불화를 겪어왔다고 한다. 작년에도 부인의 신고로 가정폭력 혐의를 받은 바 있는 그는 가정내 문제를 목사와 상담하는 방식으로 풀려고 했다. 사건 이틀 전까지 한인사회 명망높은 한 목사와 상담약속을 잡아놨던 그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틀 후 그는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경찰 앞에서 자해 및 방화 소동을 저지르다 체포돼 현재 35만달러의 보석금을 책정받고 구속된 상태다.
일부 한인은 경찰까지 부를 것 있었나며 이씨를 두둔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으나 경찰과 한인사회 상담 전문가들은 갈등을 키우는 것이야 쌍방과실이 될 수 있지만, 사건이 이쯤되면 한쪽은 피해자, 한쪽은 가해자로 남는 것이 당연지사라고 말하고 있다. 이어 한인사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가정내 문제가 있어도 쉬쉬만하는 한인들의 문화가 가정폭력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며 안으로 곯다가 이따끔씩 터져나오는 가정폭력 사건의 이면에는 수백 수천의 가정이 이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한 상담가는 특히 한인사회에서는 집안 문제를 교회 및 기관 사람에게 이야기했다가 ‘누구네 엄마가 매맞고 산다더라’라는 소문이 돌까봐 두려워 삭히고만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시카고시 경찰의 찰리 스미스 가정폭력 담당자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대응방법이 적절했다고 말한다. 인간적으로야 가해자가 안돼 보일 수 있지만, 구타를 당하는 아내의 입장이 돼봐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시카고시에 수년전 24시간 가정폭력 헬프라인(877-863-6338)이 개설된 후 걸려오는 전화 중 40%가 아시안계 여성들이라고 한다. 한인 가정폭력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여성핫라인에서도 매년 100~200건의 상담 요청을 받고 있다.
유경란 여성핫라인 사무총장은 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미국 사회에 이민와서도 ‘여성은 남성의 소유’ ‘여자는 때려도 된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를 가진 이들이 여전히 많다. 가정폭력은 자녀가 부모의 폭력을 목격하게 되고, 인생반려자가 서로의 인격을 무시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 가정의 뿌리를 뒤흔드는 중범죄라고 그는 전했다.
지난 24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여성 6명 중 1명꼴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통계로만 보자면 한인여성 6명 중 1명의 얼굴에도 그늘이 지고 있다는 말이다. 주변 여성들이 상처입은 얼굴을 화장으로 가리고 있지 않은지, 가정폭력을 접한 아이의 학교 과제물에서 이같은 증거가 발견되지는 않는지 눈여겨봐야할 때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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