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밝힌다”는 얘기가 매스컴에서 나오면 우리는 숙연해진다. 과거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방송이 얼마나 민주투쟁과 언론 자유를 위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는지는 필자의 과문한 탓으로 별로 들은 바가 없다.
그러나 진실 밝히기에 반대할 명분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우린 숙연히 들을 준비가 되어지는 것이다. 한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바로는 예나 지금이나 주요 방송사 두 군데는 집권층의 영향력 안에서 별로 진실 밝히기와는 거리가 먼 채로 운영되는 걸로 알고 있다. 언론에 불만이 많고, 불만이 있으면 항상 세상에 알리는 것을 주저 않는 현 정부에서도, 대통령부터 방송매체에는 별로 불만이 없어왔다는 사실은 간접적으로 이를 입증한다고 하겠다.
그런 방송매체에서 진실을 밝힌다는 명제아래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의 진위 여부를 들고 나왔다. 난자 취득과정에서의 실수는 황 교수도 사과했으니 더 얘기할 필요가 없는데 연구 결과에 대한 이슈화는 같은 학문을 하는 처지에 그대로 넘어가기가 껄끄럽다. 껄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불쾌하고 기가 차는 것이다.
MBC에서 무슨 연유로 처음 황 교수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이 세상의 하고 많은 비리와 권력의 부당함과 억울한 사연이 많은 중에 하필 왜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자의 연구에 진실규명의 목표가 정해지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너무나 유명해진 이에 대한 질시와 연구과정과 공로표창 과정에서 불만이 생긴 게 이유가 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국제학술지에 심사 후 실린 논문에 대해서 결과의 진위 여부를 그 전공 바깥, 아니 학자도 아닌 방송에서, 이슈화하는 것은 우리의 훈련된 기본상식을 넘어선다. 전공분야의 세계권위자들이 가만히 있는데 학문 영역 바깥에서 이런 문제가 나와야 한다는데 우리는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기가 차는 일인 것이다. 우선 연구바깥 세상에 있는 분들을 위해 자연과학은 아니지만 사회과학의 한 분야에서 편집인으로 있는 처지에서 학술지 심사과정을 알려드리려 한다.
학회에서 발표하고 또 수정하고 다듬은 연구논문이 학술지 편집인에게 공식 접수되면 그 방면의 세계 권위자인 심사위원 두 분에게 심사 위촉을 하게 된다. 심사위원은 누구 논문인지 모르고 논문 저자는 누가 지금 자기 논문을 심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논문의 명제와 방법론과 데이터의 분석이 객관적이고 가치 있는 것인가 전문가로서 평가가 끝나면 “수정해 볼 가치가 있는 논문”이다, 아니면 거부해야 한다는 평가 리포트를 보내온다. 처음 본 것이 훌륭한 논문이라 학술지에 게재하자는 경우란 거의 없는게 아니라 아예 없다. 두 심사위원 중 한 분이라도 수정해 보라는 평가가 나오면 편집인이 판단해서 저자에게 평가 리포트 두개와 편집인의 의견이 첨부되어 연락이 간다. 다시 논문의 수정작업이 행해지고 2차 3차의 심사가 끝나고 최종 살아남는 논문이 발표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의연하게 자랑스럽게 살아남는 명분이나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확립이 된 모든 것에 대한 파괴가 청산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꿈이란 게 남아 있어야 한다. 꿈과 숭고한 것이 없는 세상에 사는 이들은 마음이 황폐해지기 때문이다.
황 교수의 연구 결과의 진위에 대한 문제는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은 얘기 안 하는 법이다. 서로의 영역에 대한 침해는 우리사회 모두를 피폐하게 만든다. 황 교수와 그의 연구진이 안쓰러워 보이는 요즘이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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