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 열흘만에 몸값 내고 풀려나
페루 수도 리마에서 퇴근길 무장괴한에 납치됐던 LA출신 사업가 곽규복(41)씨가<본보 10월4일 자 A1면 보도> 몸값을 내고 납치 열흘만인 8일 무사히 가족들의 품안에 돌아왔다.
퇴근길 대로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납치됐던 곽씨의 귀가 상황은 피랍 당시만큼 극적이다. 9일 오전 곽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납치범들이 토요일(8일) 밤 한 주택가 뒷골목 길에 양눈을 가린 채 내려주고 달아났다”며 “이들이 택시요금이나 하라며 쥐어 준 20솔(약 6달러)을 가지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곽씨는 “풀어주는 납치범들에게 또다시 괴롭힐 것이냐고 물었더니 ‘같은 인물을 두 번 납치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며 납치범들에게 건넨 몸값의 규모에 대해서는 “10만달러 단위”라고만 밝혔다. 페루21 등 현지 언론은 곽씨 일가가 납치범들에게 30만 달러 정도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곽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9월28일 오후. 귀가 중이던 곽씨가 탄 미니밴이 커브길을 도는 순간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끼여들며 급브레이크를 잡았고 또다른 자동차 한 대가 뒤를 가로막았다. 자동차에서 뛰어나온 납치범 4명은 권총을 들이대며 곽씨를 자동차에서 끌어내렸고 그의 얼굴에 미리 준비한 복면을 씌워 자동차 트렁크에 가두었다.
곽씨를 트렁크에 가둔 자동차를 1시간 정도를 달린 끝에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추었다. 곽씨는 “얼굴에 빵 모자를 2개 씌우고 수갑까지 채워 앞을 전혀 볼 수 없었다”며 “끌려간 곳은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고 전했다.
공포감에 질려있던 곽씨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대로 무서움을 이기는 기지를 발휘했다. 곽씨는 같이 긴장해 있는 납치범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유창한 스패니시 실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곽씨는 “‘돈이 목적이지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조금 놓았다”며 “매일같이 언제 풀어줄 것이냐고 물으면 납치범들이 늘 ‘오늘밤에 간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곽씨가 억류된 동안 곽씨의 부인은 미국 대사관 측의 협조로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였다. 몸값 협상이 이뤄지는 동안 곽씨는 묶여있는 침대에서 거의 대소변을 해결해야하는 엄한 감시를 받았다. 납치범들이 식사를 건넸지만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물만 마셨다고 한다.
곽씨는 “풀어준다고 말만 하던 납치범들이 토요일 정말 풀어주었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부인과 아이들이 귀가를 믿지 못하면서도 크게 기뻐했다”며 “아이들과 부인 생각밖에 없던 지난 열흘은 잘못 꾼 악몽만 같다”고 말했다. 곽씨는 조만간 부모형제를 만나기 위해 LA에 올 예정이다.
<김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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