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비전’ 강조
“정체성 확립·2세 뿌리교육 적극 지원”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부임한 이윤복 LA총영사.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의 이 총영사는 요즘 영사관 신분증 발급 추진, 교민보호 재해 비상대책 등 다양한 현안들로 눈코뜰새 없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해외 최대 한인밀집지역인 LA에서 9개 정부부처에서 파견된 20여명의 영사들을 지휘하며 업무를 수행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나름대로 정해진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따금 부딪치는 역풍은 적지않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재임 2년3개월째를 맞은 이 총영사를 만나 그의 한인사회관, 그리고 총영사관과 한인사회와의 관계 등에 관한 진솔한 입장을 들어봤다.
“멜팅팟 아닌 샐러드보울 돼야”
이 총영사는 동포사회가 “이민 2세기를 막 시작한 동포사회가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가운데 성장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도 2세들이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뿌리교육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이민 100주년의 열기를 현재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아쉬움을 표하면서 한인사회가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총영사는 “한인사회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성장, 발전해가기 위해서는 미국사회에 대한 인식변화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과거의 ‘멜팅 팟’ 개념을 버리고 ‘샐러드 보울’ 개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뿌리교육에 실패한 일본계 커뮤니티와 이민사회에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유대계 커뮤니티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정부와 LA총영사관도 한인 2세들을 위한 역사교육과 뿌리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총영사관은 동반자겸 협력자”
이 총영사는 남가주 이민 커뮤니티 중 가장 모범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놀라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경제적 성장을 이룬 한인 사회에 뿌듯한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갖고 있으며 다른 외국 공관원들도 부러워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총영사는 “한인 사회에도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며 “일각에서는 총영사관과 한국 정부를 70년대의 소위 ‘관’을 바라보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총영사관을 협력자이자 동반자로 여겨주길 바란다”는 그는 “권위주의에 빠진 외교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교민보호가 최우선 업무”
요즘 외교부 내에서도 현지 교민보호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게 이 총영사의 전언이다. 특히 지난해 이라크에서 발생한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동남아 쓰나미 참사를 계기로 한국정부가 교민보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정립했다는 것이다.
이 총영사는 “‘국민만족 영사서비스 체제 구축’을 목표로 신설했던 ‘재외국민 영사 콜센터’와 ‘재난대비 신속대응팀’은 이번 카트리나 피해당시 가장 성공적인 모범사례로 꼽힐 만큼 성과를 인정받았고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미국 관계기관과 타국 정부 기관 관계들도 부러워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또 “이를 계기로 LA에서 발생할지도 모르는 대형 지진에 대비한 비상 재해대책 프로그램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영사관 신분증 발급 확대”
이 총영사는 “영사관 신분증을 내년 상반기중 발급할 수 있도록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LA시장 등 LA시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그동안 예산문제로 시행이 지연됐으나 내년 예산에 신분증 발급 기계 구입비용이 반영되어 있어 시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조폐공사의 신분증 발급 기계가 도입되고 담당 행정 직원이 파견돼 성공적으로 발급이 시행될 경우 미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총영사는 “모든 한인들에게 체류신분에 관계없이 영사관 신분증을 발급한다는 것이 한국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해외공관 중 가장 바쁜 곳”
이따금 불거져 나오는 총영사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의식한 듯 이 총영사는 “LA총영사관 만큼 한인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공관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영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관 하루평균 방문객이 500여명, 하루 민원 처리건수가 300여건에 이른다.
또 하루에 360명 이상이 공관 웹사이트를 방문해 민원정보를 취득하고 20여건 이상의 민원이 인터넷을 통해 처리되고 있다.
이 총영사는 “영사관의 모든 업무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영사들은 사생활이 없을 정도로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인력 충원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영사관측의 고충도 토로했다.
LA총영사관은 어떤 곳
LA총영사관은 9개 정부 주요부처에서 파견된 20여명이 근무하는 작은 정부다. 여기에 일반직원까지 합하면 전체 직원수는 50명이 넘는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 주재 대사관을 제외하면 해외공관중 규모면에서 가장 큰 곳이다. 특히 LA가 최대 한인밀집인 점을 감안한다면 기능과 역할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역설적으로 본다면 LA총영사관이 부담하고 있는 업무량이 만만치 않으며 그에 따른 한인들의 만족도와 기대치를 맞추기도 쉽지 않은 셈이다. 특히 내년에는 신분증 발급과 한인 수감자 한국 이관 문제 등으로 업무량 증가가 불가피해 인력확보 등이 내부현안으로 더오를 전망이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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