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은 최선의 정책이다”란 말은 영어를 배울 때 들은 격언 중의 하나이다. 이 격언을 시비 없이 그냥 받아들이면 좋은 말이다. 그냥 이 말을 조금 뜯어보면 좋은 말이긴 하나 말 그대로 정직이란 여러 가지 정책 중에서 가장 최선의 정책이란 얘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방어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 방어망 속에는 남을 위하고 이 사회를 위한 공익적인 내용도 많이 있지만, 상당분은 전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이해가 달린 내용이다. 따라서 정직이란 것도 나를 지켜주는 하나의 울타리 또는 철책선 같은 장치란 것이다.
정직하다는 것을 측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정직이란 자신이 지속적으로 손해볼 것과 불이익을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을 정직이란 잣대 앞에 지속적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런 정직이야말로 진정한 정직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정직하지 않을 수 없는 제도적인 장치와 감시 하에서의 정직은 앞서 말한 정직과는 하늘과 땅 차이의 간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직은 한 두 번의 사례보다는 오랜 기간을 두고 여러 가지 현실에서 관측되어야 그 정직의 신뢰도가 생길 것이다.
직장에서의 정직은 둘째 치더라도 가정에서의 정직도 쉬운 일이 전혀 아니다. 본능과 이기심의 공기가 그래도 가장 희박한 무공해 청정지역이 가정인 것 같지만 정직이 멸종 위기를 맞는 곳 역시 가정이다. 은폐, 축소, 확대 등의 기법은 정보부 사람들만 쓰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가장이나 주부가 상습적으로 쓰기도 하며 자녀들도 그런 수법들을 잘 배워 사회로 진출한다. 출세를 위해 부모들이 가정교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교회는 그럼 어떤가? 교회만큼은 정직이란 채소가 무럭무럭 잘 자라나는 무공해 채소밭인가? 아니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소리칠 것이다. 교회 역시 가정처럼 정직이 테스트되는 곳이다.
그러나 테스트하는 강도가 교회는 다르다. 교회에서의 정직 시험은 하나님의 말씀이란 이글거리는 용광로 속에 담금질을 하는 시험이다. 직장 상사를 속이거나 오래된 부정직한 관행, 회계감사 시스템의 악용 같은 일터에서의 부정직이나 식구끼리 가족적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부정직 만세 가정’도 교회에서 실시하는 정직의 강도 시험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교회에서의 정직은 도저히 속일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이며 인생 앞에서의 지속적인 정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믿음이란 곧 그 사람의 정직 정도라고 본다. 비열할 대로 비열한 인생끼리의 도토리 키재기식 정직 평가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공의와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그대로 노출시킨 채 정직하게 우리 모두의 비열한 죄악들을 다 담당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 만이 절대 정직의 표준 교과서가 된다. 그것은 종교나 사상이나 이념의 조미료가 들어간 정직의 개념이 아니라 생명을 주고 생명을 다시 산 정직이란 정찰제 유통과정이다.
최 상 준
(어바인 한믿음교회 목사)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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