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규 김스전기 매니저(왼쪽)가 중국 회사가 일본으로 수출하는 냄비를 손님에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베트남산 가전·생활용품에 일본어 표기
한인들 선호 노린 마켓팅 전략
하숙집에서 살다 최근 아파트를 얻어 이사한 독신 직장 동료의 집들이 선물을 사러 지난 주말 김스전기에 들렀던 대니 정(31)씨. 라면을 끓이는 냄비를 고르던 정씨는 일본어가 잔뜩 적힌 박스를 보고 냉큼 집어들었다.
정씨가 “야, 일제 냄비니 라면 더 맛있겠다”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김스전기 직원이 “그냥 일본에 수출되는 상품이라 일본어가 적혔을 뿐, 중국 회사가 만든 중국산이에요”라고 답했다. 일제라고 좋아했던 정씨는 순간 머쓱해졌다.
한인타운 생활용품 업체에 ‘유사 일본산 제품’이 넘쳐나고 있다. 아직도 한인 소비자 마음속에 ‘일제=최고 품질’이라는 고정관념이 깊게 뿌리 박혀 있어서다.
현재 생활용품 업체에서 판매되고 있는 진짜 일제 제품은 20% 남짓이다. 일본 회사가 노동력이 싼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주문자 상표 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한 것까지 포함해도 일제 제품은 30%가 넘지 않는다.
나머지는 유사 일제 제품이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 회사가 중국, 베트남에서 생산한 뒤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박스에 일본어가 잔뜩 인쇄한 제품을 말한다. 박스 아래 조그맣게 적힌 원산지 표시나 생산업체 마크를 보지 않으면 일제 제품으로 착각하기 딱 좋다.
한 생활용품 업체 최모 매니저는 “다른 커뮤니티는 몰라도 아직도 한인타운에서는 일본 물건을 한국산보다 더 신뢰하는 분위기가 많다”며 “똑같은 제품을 진열해도 일본제를 먼저 찾는 손님 비율이 80% 이상이니 업체로서도 일본산이라는 느낌을 더 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매니저는 컨테이너로 들어오는 제품은 거의 100%가 유사 일제 제품이라고 전한다.
유사 일제 제품이 넘쳐나는 또 다른 이유는 치열한 원가 경쟁 탓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면서도 일제처럼 보이게 하려면 유사 일제 제품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업체 관계자들의 말이다.
다른 업체 박모 매니저는 “일본산 냄비는 16.99달러이지만 이 돈 다 내고 사는 손님은 없다”며 “이 냄비가 중국에서 생산한 일본 회사의 OEM 제품이 되면 12.99달러가 되고, 똑같이 흉내낸 유사 일본 제품이면 6.99달러니 어쩌겠냐”고 말한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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