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초록색 잠자리가 번잡한 다운타운 패사디나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를 날아다니다 어디론가 사라진다. 좀처럼 보기 어렵던 잠자리가 요즘 들어 한두 마리씩 눈에 뜨이기 시작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던 습기 많고 끈적거리는 여름밤이 메마르고 싸늘한 LA 근교를 몇 해전부터인가 며칠간씩 찾아와 온 신경을 거스르고 지나간다. 자연현상에 변화가 생긴 것이 피부로 느껴지면서 잠시 다녀온 한국의 여름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지나치는 차량의 경적이 마치 한국에서 들었던 매미와 풀벌레 소리처럼 들리면서 20년이 넘는 미국생활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나라 또 어릴 적 나의 짧은 추억을 남겨준 그 땅의 붉은 흙 냄새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광대하고 풍요로운 이 미국 땅에서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국 땅을 그리워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하루만 비행기타고 가면 되는 거리라고 하지만 한번 길떠나기가 왜 그리 망설여지고 여유가 없는지.
향수가 깊어지면 한국과 흡사한 한인타운을 둘러보지만 상점을 나와 도로로 진입하면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건 나의 것이 아니었으니 이제는 내 것이 되어버린 미국언어와 글뿐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던 이번 여름 어느 주말, 컴퓨터게임과 TV로 방학을 보내기로 작심을 한 것 같은 조카들과 색다른 체험을 위해 집을 나섰다.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폭포수가 흐르는 산골짜기 계곡을 향했다.
조카들은 낯설음으로 투덜대다 산과 바위들, 그 사이로 흐르는 물, 그리고 대자연이 어우러진 숲에 금새 친숙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인간은 자연에 속한 피조물임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햇살을 부셔내며 얼음처럼 차디찬 물이 바위와 조약돌사이를 자연의 약속에 따라 빠르게 흘러 내려가고 있었고 간혹 물줄기가 약한 곳에선 물풀사이로 헤엄치는 송사리들과 올챙이들이 자연 속에 숨겨진 생명의 신비로움을 보여주었다. 나뭇잎과 풀들의 모양은 좀 달라도 물과 자연의 소리는 한국의 것과 비슷했다.
한인타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있는데도 그곳을 찾는 한인들은 뜸했다. 아름다움이 지척에 있어도 그것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는 우리의 이민생활이다.
휴가란 목돈을 마련해서 한국, 알래스카, 유럽, 혹은 아프리카의 사파리공원이나 아마존의 정글로 가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휴가는 가까운 곳에서 작고 새로운 경험으로 시작하고 또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거대하고 웅장한 곳을 찾아가야 휴가이고 행복이 아니라, 가깝고 작은 오솔길 시냇가에서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미 선진 대열에 선 듯한 한국인들의 겉치레와 허세 그리고 낭비를 손가락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굶주린 북한동포를 도와줄 것인지 아닌지도 결정하지 못한 채 어느새 그들의 고통을 머릿속에서 지워내고 있었다.
6.25와 8.15를 보내며 허영 속에서 만족감을 채우려했던 나의 여름휴가 계획을 반성해본다.
토마스 오 소셜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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