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단위 연산을 1초에 완료
오늘날의 가장 강력한 컴퓨터보다 몇배나 더 빠를, 수퍼컴퓨터의 성능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 위한 국제적인 경쟁이 치열하다. 아무리 빨라도 2010년 경에나 사용할 수 있게 될 새 수퍼컴퓨터가 점점 과학, 기술및 국방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투자로 인식되면서 미국과 일본간의 오랜 경쟁 무대에 새로 중국까지 끼어 들고 있다.
미국 10개사 이미 착수 주로 군사·산업적 목적
‘국가적 자부심’차원… 일본·중국까지 뛰어들어
과거 핵무기 디자이너와 코드 브레이커들의 독점 영역이었던 초고속 컴퓨터는 이제 일상 생활용품 디자인에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다. ‘프록터 & 갬블’은 ‘프링글스’ 포테이토 칩스 제조대 위로 바람이 펄럭이지 않도록 공기의 흐름을 조절하는 연구에 수퍼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요즘은 수만, 수십만개의 프로세서 칩들을 한데 묶는 것을 가능케 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소위 병렬식 컴퓨팅이 발달해 장차 수퍼컴퓨터의 속도는 비용과 적절한 전류, 시스템을 냉각시킬 능력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500대중 19대를 갖고 있는 중국의 신문들은 최근 더이상 미국에 의지하지 말고 고속 컴퓨터 기술을 개발할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수퍼컴퓨터는 국가적 자부심의 문제로 대두, 일본은 물론 모든 면에서 일등국가로 대접받기 원하는 중국까지 이 일에 뛰어 들고 있다”는 수퍼컴퓨터 디자이너 스티브 월럭의 말대로 최근 일본과 중국은 모두 ‘페타플롭(petaflop)’의 장벽을 넘기 위핸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페타플롭’이란 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는 단위로 10의 15승, 그러니까 1만조 단위의 수학적 작업을 1초에 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어림잡아 현재 가장 빠른 컴퓨터의 8배에 해당하는 속도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는 작년말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에 설치된 것으로 1초에 136조 단위가 넘는 계산을 해치운다. 시중에 나와있는 가장 빠른 PC보다 10만배 빠른 것이다. 이 기계 ‘블루 진/L’을 제작한 IBM은 올 연말 이전에 그 속도를 두배 더 빠르게 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이 개당 10억달러는 들 것으로 예상하는 ‘페타플롭’ 수퍼컴퓨터 디자인에 투자된 자금은 아직 별로 많지 않지만 그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힌 회사는 10개나 된다. 미국에서는 ‘크레이’ ‘IBM’ ‘선 마이크로시스템스’가 국방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개발 계획의 후원을 받아 2010년까지 페타플롭에 도달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선진국방연구계획국(DARPA)의 고성능컴퓨터시스템 개발계획은 1억5,000만달러의 자금을 가지고 2003년에 착수됐다. 일본이 2002년에 기후연구용으로 내놓은 ‘어스 시큘레이터’가 사상 최초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로 등극하자 마련된 대응책중 하나다.
미국은 정부의 상당한 자금 지원 아래 IBM, 크레이와 실리콘 그래픽스가 저마다 새로 수퍼컴퓨터를 제작, 2004년 11월로 다시금 세계 제1위를 되찾았고 지난 6월 발표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 500대중 미제는 1,2,3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4등으로 밀려난 ‘어스 시뮬레이터’의 속도는 1등의 4분의 1 정도다.
그러므로 미국은 컴퓨팅 기술에서 계속 우위를 점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렇게 빠른 미국의 기계들은 모두 무기 개발 실험실에서 군사 목적으로 우선 사용되고 있다. 미국이 수퍼컴퓨터의 능력을 활용하지 않으면 원유및 천연개스 탐사 , 자동차 디자인과 제조 같은 주요 시장에서 밀리게 될까봐 걱정하는 과학자와 업계 간부들도 많지만 초대형 컴퓨터는 프로그램 하기가 어려워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된다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컴퓨터가 미국의 경쟁력 향상에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하는 수퍼컴퓨터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 4월 일본 자동차제조사협회가 자동차 엔지니어들이 ‘어스 시뮬레이터’를 이용, 자동차 충돌 시뮬레이션 실험의 범위를 확대시킨 덕분에 새로운 자동차 모델 개발에 드는 시간을 크게 단축시켰다고 보고함에 따라 고성능 컴퓨터 작업이 업계 경쟁력 향상에 결정적 영향력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 다른 나라들의 수퍼컴퓨터 개발 노력을 살펴보면, 작년에 IBM의 PC 부문을 인수한 중국의 ‘레노보 그룹’은 중국의 컴퓨터 기술 발전을 위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2010년까지 페타플롭 수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에 합세했다. 이와는 별도로 또 다른 컴퓨터 회사들인 ‘도닝’과 ‘갤럭틱 컴퓨팅’도 페타플롭급 시스템 개발 의사를 비쳤다.
프랑스의 컴퓨터사 ‘불’도 2013년까지 페타플롭에 도달할 계획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어스 시뮬레이터’의 후속작으로 페타플롭보다 10배 빠른 수퍼컴퓨터 개발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고 이와는 별도로 일본의 컴퓨터 제조사 ‘후지츠’는 지난달 3배속 페타플롭 컴퓨터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김은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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