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 노동운동이 일어난 것은 1820년대였다. 휴일도 없이 매일 중노동에 시달리던 일부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만 일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역부족으로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한 동안 잠잠하던 노동운동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급속히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힘을 받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와 파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기업주와 정부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대항했다.
그중 악명 높은 것이 1914년 4월20일 벌어진 ‘러드로우 학살사건’이다. 콜로라도 러드로우 광산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자 석유 재벌 존 D. 록펠러의 아들 록펠러 주니어가 고용한 경비원들이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노동자 캠프를 습격,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5명의 남성과 2명의 여성, 12명의 아동이 사망했다.
이같은 비극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꾸준히 성장, 대공황과 함께 친 노동자적인 루즈벨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서유럽과 일본 경제가 부흥하고 미국 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노동운동도 시들기 시작한다. 기업가를 뺨치게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노동 귀족’의 등장도 노조의 이미지 실추에 이바지했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세계화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구조적으로 노조가 설 땅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노동자의 10% 정도만이 노조에 가입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전반적인 노조의 쇠퇴에도 불구, 예외적인 집단이 있다. 공무원 노조다. 이들은 정부의 비대화와 함께 오히려 세를 키우고 있으며 ‘사람을 죽이기 전에는 쫓겨나지 않는’ 철 밥통을 껴안고 있다. 제임스 한 LA 시장 재임기간에 경기 회복으로 시 예산이 3억달러나 늘어났는데도 경찰관 증원 등 정작 필요한 데는 거의 쓰지 못하고 대부분 공무원 봉급 인상으로 사라진 것만 봐도 이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노동 운동가 출신인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가 압도적 표 차로 LA 시장에 당선된 데 이어 코리아타운을 포함하는 10지구 LA 시의원으로 재직 중이던 마틴 러드로우가 LA 카운티 노조연맹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이 단체는 80만회원에 357개 노조를 아우르는 막강한 파워를 지닌 곳이다. 역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비아라이고사의 보좌관 출신인 러드로우는 결국 친정으로 돌아간 셈이다. 비아라이고사도 시장 당선 후 처음 한인타운 방문에서 한인 노동상담소를 찾아 자신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과시했다.
사람이 하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노조도 약자의 대변자와 집단 이기주의의 표본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악덕 기업인이 존재하는 한 노조도 필요하지만 자칫 생산성 향상이나 기업 경쟁력을 가로막는 장애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LA의 실세로 떠오른 비아라이고사와 러드로우가 앞으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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