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타운 근교 에코팍에는 아름다운 물새들이 많이 노닌다. 주변이 상가로 들어찬 맥아더 공원보다는 주위가 아늑하고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조용한 호수공원이다. 분수도 있고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는 곳이기도 하다.
한가롭게 물위에 떠 노는 물새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는 이 호수는 천둥오리, 거위, 비둘기, 참새, 또 여러 이름 모를 철새들이 함께 어울려 항상 작은 공연을 펼쳐지는 무대 같다.
가끔 이곳에 올 때면 나는 항상 빵을 가지고 온다. 사람들이 먹지 못하게 된 마른 빵이다. 나의 한 노인 고객이 가져다주는 빵으로 그것을 부셔서 새들에게 나눠준다. 이 할머니는 80이 넘어 머리가 하얗게 세고, 아주 작은 키에 두메산골에서 사셨다는 분이다.
70세를 넘어서야 한글을 터득했고 숫자를 배워서 그때부터 자유롭게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셨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 오셔서 한국에 전화를 걸 수가 없어 불편해서 숫자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매주 한번 방문하는 노인 아파트에서였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항상 찾아오셔서 우편물 도움을 구하거나 질문을 하시곤 한다. 그리고는 미국 마켓에서 노인들을 위해 나눠주는 빵을 한 봉지씩 가져다주신다.
빵을 타려면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을 가야 한다. 굽은 허리로 그냥 걷기도 힘들 텐데 젊은 사람에게는 가벼울지 모르지만 그 무겁게 보이는 마켓 봉지에 하나 가득 채운 빵을 꼭 가져오시는 것이다.
판매기간이 지나기 바로 전까지 팔 다 남은 빵이라서 빵이 일정하지 않고 여러 종류다. 어느 날은 딱딱하게 굳은 바겟트 빵을 가져오셔서 “이것 가져가서 쪄먹어이…” 하신다.
사무실에 여러 사람들이 왔다가지만 우리의 한국 할머니는 항상 그리고 마냥 사랑스럽고 아름다우시다. 하얀 머리에 자그마한 체구. 평생 시골 햇살에 그을리어서 까만 피부의 작은 얼굴에는 굵은 주름들이 있다. 한국에서의 어려운 삶을 한눈에 보게 하는 모습이다.
그런 할머니가 일주일 내내 빵을 간직하셨다가 가지고 오신다. 눈이 어두워서 유효기간 날짜도, 곰팡이가 슨 것도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처음에 할머니가 빵을 가져와 주실 때는 의아했다. 미국식으로 자란 탓인지 뭘 받는다는데 익숙하지가 않았고 엉뚱한 기분마저 들었다. 돈도 아니고 곰팡이 슨 빵이라면 이건 뇌물도 아닐 테고 이것이 무엇인가 싶었다.
할머니는 뭔가 주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사랑을 담은 어떤 것을. 음식을 하기엔 본인이 너무 나이가 드셔서 안 되고 걷기도 힘드실 터이니까. 소셜 워커인 내가 무료로 도움을 드리니 그게 부담이 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 같다.
어느새 그 빵은 거부할 수 없는 한국 할머니의 인정과 사랑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담긴 마른 빵은 항상 내 마음과 철새들을 배부르게 한다.
토마스 오/소셜 워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