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가 내 첫사랑이에요.
시카고에 사는 한인 노부부가 가족과 주의의 축복속에 결혼 70주년을 맞이해 화제다.
지난 9일 켓지길에 위치한 노인아파트 무궁테라스(4848 N. Kedzie Ave., Chicago)에 거주하는 이종훈(92) 할아버지와 박이숙(88) 할머니는 결혼 70주년을 맞이해 90여명의 하객을 모신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을 올렸다. 결혼 25주년은 은혼식, 50주년은 금혼식, 60주년은 금강혼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70주년은 이를 따로 뜻하는 용어가 따로 국어사전에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본국에서도 결혼 70주년을 맞은 부부는 신문 꼭지를 장식할 정도로 특별한 경우 중 하나.
꼭 70년 전인 1935년, 평양에서 태어난 22살의 청년 이 할아버지는 함경북도 북청에서 태어난 18세의 박 할머니를 맞선으로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예뻤지 그럼,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좋은데라고 이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일찌기 16세부터 독립운동에 가담해 삐라를 뿌리는 일을 하다 일본 경찰에 붙들려 감옥에서 3년형을 살다 나왔다. 그 후 큰 뜻을 품고 일본에 건너가 도요타 전자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이가 드물던 때라 고국으로 돌아온 이 할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숱한 오해를 받으며 고초를 겪어야 했다. 무전기를 다룰 줄 알고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어 한 때는 미국 스파이로 오해를 받아 잡혀 들어간 적도 있다 한다.
박 할머니는 70년에 걸친 결혼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46년 남한행을 감행했던 때를 꼽았다. 많이 무서웠지요. 가족 모두가 목숨을 걸고 감행한 일이었습니다. 가장 기쁜 일로는 자식들이 일류대학에 진학했을 때를, 가장 아쉬운 점으로는 기술자의 아내로 살며 마음만큼 남을 돕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여건이 여의치 않을 때가 많았어요. 노인아파트에 거주하면서는 할머니 5명과 함께 1개당 25센트씩 받는 고무 인형을 만들어가며 1만달러를 모았습니다. 그 돈을 한국의 탁아소, 양로원 등에 기부했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서약서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혼을 결심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70년동안을 금실좋게 지내실 수 있었는지 비결을 묻자 이 할아버지는 뜻밖에도 자기 생활에 충실하면 된다는 지론을 펼쳐보였다. 자기 생활에 충실하면 가족과 지내는 시간에도 구성원 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게 되고, 예의를 지키면 가족 관계 역시 더욱 돈독해진다는 설명.
특히 한국 남편들은 부인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경우가 많지만, 부인과 좋은 관계를 지키려면 부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 할아버지는 밝혔다. 이어 그는 자유롭게 사랑해서 결혼하는 젊은이들은 이혼도 자유롭게 하는 것 같다. 우리 역시 부부 사이에 왜 싸울 때가 없었겠는가? 이혼 생각 안하고 가정내의 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풀어나갔기 때문에 70년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미국에 이민와 하루에 투잡을 뛰고 잠도 4시간밖에 못잘 정도로 열심히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했다. 그는 무려 82세까지 미국 회사 ‘B&K 인스트루먼트’에서 과학실험기구 제작일을 하는 기술자로 일할 정도로 회사로부터 책임감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때문에 자녀 교육은 박 할머니의 몫이었다. 두 분은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큰아들 이동우(67)씨는 우리 부모님은 자식에게 화내시는 법이 없고 언제나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셨다. 여든이 되신 나이까지 해외 여행을 다닐 정도로 건강하셔서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60년에 미국으로 유학온 이씨는 로체스터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받고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임원을 역임했다. 남동생 이동주(56)씨 역시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으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아들 둘 모두 손재주 많은 아버지를 닮아 공학쪽으로 진로를 택하게 된 셈. 큰며느리 이은숙씨는 이렇게 좋은 시부모님은 없을 것이라며 우리 시어머님은 ‘시카고의 모범 할머니’라고 불릴 정도로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시는 분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시아버님은 90세가 넘으신 나이에도 며느리와 손자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을 정도로 나이와 상관없이 늘 배움의 자세를 갖추신 분이고, 기억력도 좋으셔서 손주들 이름, 전화번호 등을 다 기억하신다고 이씨는 말했다. 딸 이충자(62)씨는 현재 남편 장창섭씨와 함께 보스톤에 살고 있다. 부모님 결혼 70년 기념식을 위해 시카고에 온 사위 장씨는 행사 내내 카메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해 보였다.
이날 축하 예배를 드린 예수마을교회의 하영진 목사도 결혼 70주년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한인사회복지회의 이성자 노인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도 미국 사회에서도 보기 힘든 결혼 70주년을 한인 부부가 하게 된 것은 기념적인 일이라며 가정의 달을 맞아 이들처럼 오래 부부의 연을 지켜온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사랑의 의미가 다시 한번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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