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이라는 것은 갈라진 공간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불필요한 공간 같고, 또 깨어졌다는 면에서 아픔과 단절의 상징처럼 느껴지지만, ‘틈’이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조그만 창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좁은 돌 틈을 비집고 새 싹이 자라 나온다. 시간과 시간 사이의 작은 틈으로 휴식의 단잠을 자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밝은 시각으로 다시 보면 틈은 새로운 축복을 받아들이는 작은 통로가 될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완벽하고 빈틈없는 인생이 되어야만 행복할 줄 알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모자란 듯 비어있는 인생의 빈 공간이 오히려 참된 축복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실수라는 틈을 따라 용서의 축복이 스며들기도 하고, 상처의 갈라진 틈을 따라 진정한 회복이 임하기도 한다. 나의 것으로만 가득 차 있었더라면 맛보지 못했을 은혜의 기쁨을 비워진 마음을 통해 채워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의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늘 가까이 붙어 있어야만 행복할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가끔은 떨어져 앉은 자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만남의 묘미를 깊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너무 가까이 있기에 미처 보지 못했던 사랑의 소중함을 먼발치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는 결혼하기 전 지금의 아내와 1년 정도 떨어져 생활한 적이 있었다. 유학 때문에 먼저 미국으로 왔기에 같은 공간 안에서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은 지금까지도 기억될 정도로 뜨겁고 애절한 문구들을 담고 있었다. 틈이 만들어 준 사랑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틈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갈라진 틈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랑을 채우고, 희망을 채운다면 더 갚진 삶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로 채움 받으면 빈 들판에서도 노래하는 인생이 될 수 있다.
지난 금요일 필자가 섬기는 교회에 시각 장애자인 하경혜 자매가 와서 짧은 간증과 함께 찬양을 불렀다. 생후 7개월만에 실명하고, 자신 때문에 부모가 이혼했다는 죄책감으로 고통 속에 살아왔던 자매인데,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났다.
그녀의 노래는 심장을 파고드는 것처럼 깊은 감동이 있었다. 무엇이 그녀의 노래와 삶을 그토록 밝게 만들었을까? 깨어진 인생의 틈 속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 비록 육체적으로 빛이 차단되고, 정신적으로는 부모와 단절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녀의 영혼이 새 소망으로 가득 차니 빛난 노래가 터져 나온 것이다.
벌써 4월도 거의 다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해졌다. 갈라진 정원 틈 사이로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듯, 우리 모두의 마음에도 새 봄의 축복이 임했으면 좋겠다.
박 성근 목사
(LA한인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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