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지나도록 결론 안나자 감금·음식 줄여
추기경 둘 사망… 2년9개월만에 선출‘최장’
13세기에 시작된 콘클라베의 역사는 추기경들의 고뇌와 고통으로 점철됐다.
1241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사망하자 로마의 귀족 마테오 오르시니는 신속히 새 교황을 선출하라는 뜻에서 10명의 추기경을 8월의 찜통 더위 속에 허물어진 궁에 가두었다. 이 첫 번째 콘클라베에서 추기경 중 1명이 숨졌고 두 달만에 선출된 첼레스티노 4세 교황도 ‘감금 후유증’으로 즉위 2주만에 사망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인 1268년 클레멘스 4세 교황이 사망한 뒤 추기경들은 로마 외곽 비테르보의 한 궁전에서 콘클라베를 시작했으나 2년이 지나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현지 주민들은 “성령이 쉽게 내리도록 추기경들을 도와주자”며 궁전의 지붕을 뜯어냈고 공급되는 음식의 양을 줄였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2명의 추기경은 숨졌고 한 명은 병이나 회의장을 떠났다. 남은 추기경들은 사상 최장 기록인 2년9개월만에 그레고리오 10세를 선출했다.
그레고리오 10세는 이런 일을 미연에 막기 위해 교황이 숨지면 열흘 안에 추기경들을 화장실이 딸린 교황청의 한 방에 몰아넣고, 사흘 안에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추기경들에게 단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되 닷새가 지나도 합의가 안 되면 합의가 될 때까지 빵과 물, 약간의 포도주만 제공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1294년 콘클라베에서 2년이 지나도록 교황을 뽑지 못하자 라티노 말라브랑카 추기경은 은둔 중인 성인 피에트로 델 모로네가 “오랫동안 교황을 뽑지 못하는 추기경들에게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말했고 결국 추기경단은 모로네를 교황으로 선출했다.
80대 노인이었던 모로네는 당나귀를 타고 입성한 뒤 첼레스티노 5세 교황으로 즉위했지만 교황청 고위층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킨 끝에 7개월만에 양위했다.
그러나 너무 가혹한 것으로 여겨져 1978년 훨씬 완화된 13세기의 콘클라베 칙령도 이보다 400년 전의 교황 선거에 비하면 너그럽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897년 교황 스테파노 6세는 1년 전 죽은 자신의 불구대천 원수 교황 포르모소의 시신을 파내 교황의 옷을 입힌 뒤 그를 왕좌에 앉히고 수많은 죄를 물었다. 유죄판결이 내려진 그의 유해는 옷이 벗겨졌고 생전에 축복을 내리던 그의 손가락들은 도끼로 잘려졌으며 나머지 시신은 티베르강에 던져졌다. 그러나 포르모소의 시신은 건져졌고 그의 유해가 사후에도 기적을 행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스테파노 6세는 폭동으로 폐위돼 옥에 갇힌 뒤 교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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