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맘 때면 한국에선 ‘사랑의 열매’라는 것이 등장하곤 한다. 각각 나, 가족, 이웃을 의미하는 새빨간 체리 모양의 열매 세 개가 사이좋게 묶여 있는 이 브로치는 이웃돕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은행이나 관공소 창구에 수북히 쌓여 있는데 원래는 무료지만 백원이든 만원이든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만큼의 돈을 내면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돼 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TV 출연할 때마다 양복 깃에 달고 나와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 열매를 지난 16일 시카고 남부 케네디킹 칼리지에서 열린 제15회 푸드 배스켓 행사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미국식 사랑의 열매는 비록 모양은 같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이웃사랑의 정신은 진정 닮아 있었다.
한국인들은 이같이 좋은 행사를 어떻게 15년동안이나 계속해 올 수 있었느냐며 말을 걸어온 사람좋게 생긴 흑인 아주머니가 고맙다며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다름 아닌 빨간 색 비드 한 알이었다. 흑인들이 머리를 꼬아 끼울 수 있게 구멍을 뚫어 놓은 이 머리 장식물 한 알을 보니, 그녀가 쓰고 있는 모자색만큼이나 강렬한 빨간 색의 감동이 진하게 밀려왔다. 오늘 한국인들이 한 연설이 너무나 좋았다. 지금까지 내게 한국인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였다. 오늘 행사를 통해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한국인들도 이 행사가 계속 진행되도록 힘써야겠고, 나 역시도 남을 도우며 살도록 힘써야겠다고 느꼈다고 그녀는 말했다.
사실 그녀만큼이나 나 역시 이 행사가 지니는 의미에 놀라고 있었다. 시카고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100만명 이상의 흑인 커뮤니티와 10만명 정도에 불과한 한인동포사회가 이같은 뜻깊은 행사를 15년째 함께 해오며 커뮤니티 정신을 돈독히 유지해왔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기에, 더욱 더 나누어 먹어야 한다고 기조연설을 한 제시 잭슨 목사의 말처럼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은 몸과 마음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를 갖기에 더욱 원초적이다. 떡을 떼어 나누어 줄 그 때에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녀가 손에 쥐어준 것은 비드 한 알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전해 준 것은 아직까지 우리 가슴속에 빠알간 숯같은 나눔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한 미국식 ‘사랑의 열매’였다. 서로 얼굴빛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이나 쓰는 언어도 다르지만 우리 모두 이 땅에 배를 타고 건너온 소수계층으로서 네가 느끼는 아픔을 나 역시 느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무언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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