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전의 대중화에 앞장선 도올 김용옥은 자기 이외에 모든 사람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다. 제자들에게 큰절을 강요하는가 하면 인터뷰 온 기자를 무식하다고 면박을 줘 돌려보내는 기행을 일삼는다.
그런 그도 꼼짝 못하는 인물이 있다. 30일 타계한 숭산 스님이다. 도올이 하버드에서 유학 중이던 시절 한국에서 온 스님이 강연을 한다는 안내 광고가 붙은 적이 있다. “웬 땡 중이 헛소리를 하러 왔나” 하며 강연장에 발을 디딘 도올은 그 자리에서 숭산의 매력에 그대로 빠져들었다. 그 후 숭산을 따로 만나 십년지기처럼 뱃속을 털어놓고 동양철학과 불교 사상에 대해 이야기 한 일을 도올은 인상깊게 적고 있다.
숭산에 반한 사람은 도올만이 아니다. 하버드와 예일 등 미국 지성을 대표하는 학계의 교수와 학생들 사이 그의 설법을 듣고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쓴 현각과 LA 북쪽 테하차피에서 자기 돈을 털어 태고사를 지은 무량 등이 모두 그의 문하생이다.
1972년 미국에 맨손으로 온 그는 제자들에게 돈을 받는 대신 세탁 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며 번 돈으로 생활했다. 진리를 전하는 일이 생계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생활 태도에 감동을 받은 미국인 제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있는 그의 선원을 거쳐간 사람만 수천 명이 넘는다. 미국뿐만 아니라 1966년부터 해외 포교에 나선 그는 입적하기 전까지 미국, 일본, 프랑스, 폴란드, 브라질 등 세계 32개국 130여 곳에 국제 선원을 세웠다.
숭산은 스스로 자기 영어를 ‘김치 영어’라고 불렀다. 문법도 엉망이고 발음도 엉터리다. 그런 영어로 하는 설법에 미국의 엘리트들이 푹 빠진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 진리는 영어를 잘 한다고 전달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수년 전 LA에서 만난 그는 70 고령에 심장 수술을 받은 직후였음에도 어린아이 같은 눈망울과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날카로움이나 현학스러움 없이 오랜 파도에 씻겨 부드러워진 조약돌처럼 평범했다.
능엄경은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이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지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이 구름으로 존재하는 동안 아무렇게나 살다 죽어도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평생을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꽃)’라는 화두를 실천하는 데 바친 그는 한국 불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누구보다 큰공을 세웠다.
한 송이 꽃이 되고 싶다던 시인 김춘수에 이은 그의 죽음은 삶과 꽃의 관계를 새삼 생각해 보게 한다. “부지런히 힘써라. 모든 것은 흐른다”던 고타마 싯다르타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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