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인근 부촌인 팔로스버디스에서 지난주 사건이 발생했다. 그곳 팔로스버디스 페닌슐라 고등학교에서 한인 남학생이 절도 혐의로 지난 2일 체포되었다. 친구와 함께 그 전 토요일 새벽 학교로 몰래 들어가 컴퓨터 10대를 훔쳐낸 혐의이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이 학생들은 고가의 애니메이션 제작용 특수 컴퓨터들을 훔쳐 인터넷 경매사이트에 내놓고 팔려다 적발되었다. 마침 그 사이트에 접속 중이던 컴퓨터 교사가 학교 컴퓨터를 알아보고 신고를 한 것이었다.
사건이 전해지자 10대 자녀를 둔 주변의 부모들은 모두 안타까워했다.
“학교 컴퓨터를 훔쳐내다니, 용감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 …” “무슨 돈이 그렇게 아쉬웠으면 그런 짓을 했을까” “부자 동네 아이가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닐텐데 웬일인가”라며 답답해했고,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의 말 못한다”는 말로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렸다.
같은 학교 학부모들이 전하는 바로 그 학생은 조용하고 착하며 어너스 클래스를 여럿 택할 만큼 학업 성적도 우수한 편이다. 유복한 가정 환경으로 보나 평소 그 아이의 됨됨이로 보나 “전혀 그럴 아이가 아니다”는 것이 동급생들의 반응이다.
하지만 요즘 학교마다 퍼져있는 포커 등 카드놀이로 인해 “빚이 많아 돈을 갚으려고 그런 것 같다”고 한인 학생들은 귀띔했다.
지난 7월 강원도 양양 인근의 동해안 해변에서 붉은 바다거북이 죽은 채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붉은 바다거북은 원래 따뜻한 지역 거북으로 한반도 인근에서는 일본 규슈나 남제주 부근에 사는데 엉뚱하게도 강원도에 나타나 화제가 되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물고기들의 감각을 흐려놓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붉은 거북뿐 아니라 괌·사이판에 사는 열대, 아열대 어종이 근년 심심찮게 한반도 해역에 나타난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수온이 올라가면서 더운 해역 물고기들이 전혀 엉뚱한 데서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여건이 ‘온난’해진 탓일까. 춥고 배고프던 시절에는 생각도 못하던 좋은 환경의 아이들이 불쑥 불쑥 엉뚱한 짓을 저질러 부모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형제는 많고 집은 좁아 방 한칸에서 여러 형제가 합숙소처럼 지내고, 등록금 제때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 다니는 일들이 별로 흉이 아니던 시절에는 가정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개 별 탈없이 자랐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 사랑 속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안전한 교외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안심을 할 수가 없다. 풍요가 지나쳐서 의식상태가 몽롱해진 탓인지 멀쩡한 가정의 멀쩡한 아이들이 종종 비행에 휘말린다.
마약, 도박, 술, 담배로 문제가 생기고, 절도나 폭행 등 중범죄에 휘말리는 아이들도 있다. 우울증에 빠져서 하루종일 입을 안 떼는 아이가 있고, 부모가 한마디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난폭한 반항아도 있다.
나름대로 잘 입히고, 잘 먹이며 열심히 부모노릇 했다고 자부하던 보통의 부모들에게 표변한 사춘기 자녀는 뒤통수를 맞는 충격이다. 과거를 수없이 되짚어 보며 “언제 어느 시점에서 내가 아이를 잘못 가르친 걸까”하고 회한에 젖기도 한다.
몇해 전 집 뜰의 데이지에 진딧물이 생겼다. 진딧물 제거 스프레이를 사다 뿌려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바빠서 못하고, 잊어버려서 못하다 보니 몇 달이 훌쩍 지났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생각이 나서 문제의 데이지를 들여다보니, 그 사이 크기가 배는 커져 있었다.
가지들이 울창하게 쭉쭉 뻗어 있었고, 싱싱한 초록의 가지에서 진딧물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데이지의 생명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진딧물이 버텨낼 수가 없었던 것으로 나는 해석했다.
유혹 많은 시대에 사춘기를 탈없이 보내기는 쉽지 않다. ‘진딧물’이 옮겨 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사랑을 듬뿍 주며 바르게 키운 아이는 결국 강한 자생력으로 ‘진딧물’을 이겨낸다고 나는 믿는다. 실수의 허물들을 벗으며 애벌레는 나비가 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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