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카드 게임 중 프로들이 최고로 치는 것은 ‘노 리밋 텍사스 홀덤 포커’다. 누가 카드 게임의 왕인가는 여기서 결정 난다. 영화 ‘라운더스’(Rounders: 도박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를 보면 이 게임을 즐기는 전문 포커 플레이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짜 도박사가 되려면 패도 잘 읽어야 하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웬만큼 도가 트면 표정만 보고도 어떤 패가 들었는지 대충 나온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상대의 마음을 읽는 동시에 자기 표정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포커 페이스’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4년마다 열리는 대통령 선거 하이라이트는 후보간의 토론이다. 양 후보가 여러 이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는 지난 수개월 간 캠페인을 통해 나올 만큼 나왔다. 그럼에도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이 행사를 갖는 것은 후보들의 동작과 표정, 태도에서 그 사람의 그릇과 진심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하는 말로 상대방을 속이기는 쉽지만 전신을 통해 나타나는 ‘몸의 언어’(body language)는 좀처럼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유능한 형사가 피의자의 말보다 눈빛을 살피는 것도 그래서다.
TV 토론회는 무승부로 끝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여기서 결정타가 터지기도 한다. 1988년 아버지 부시와 접전을 벌이던 두카키스는 사회자로부터 “당신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됐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는 질문을 받고 어영부영 얼버무리다가 정치 생명에 종지부를 찍었다.
같은 해 부시의 러닝메이트로 나왔던 퀘일 역시 토론회에서 케네디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가 민주당의 벤슨 부통령 후보가 “케네디는 내 친구였다. 당신은 케네디가 아니다”라고 쏴붙이자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 먼 노루처럼 멍하게 서 있었다. 그는 그 후 워싱턴의 조롱거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정타까지는 아니지만 토론에서 이미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손해 본 사람의 하나가 닉슨이다. 1960년 뭔가 어두운 표정에 땀을 흘리며 숨기는 듯한 닉슨은 말은 더 잘 했지만 밝고 쾌활한 케네디와 대조되면서 TV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1980년 카터는 레이건을 “매우 위험한 인물”로 계속 몰아 부쳤지만 레이건의 환한 미소는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카터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2004년 대선 TV 토론회가 30일부터 3차례에 걸쳐 열린다. 부시는 과거 여기서 몇 번 재미를 봤다. 1994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서 앤 리처즈 당시 주지사는 ‘멍청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부시를 깔보다 망신당했고 2000년 고어 또한 부시를 얕잡아보다 고배를 마셨다. 유권자들이 리처즈나 고어의 오만함보다 부시의 성실함을 더 높이 샀기 때문이다.
여론 조사에서 부시에게 밀리고 있는 케리로서는 토론회야말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귀중한 찬스다. 과연 그가 이를 역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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