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남자 체조 종목별 결승 철봉 경기가 열린 올림픽 인도어홀에서 세번째 연기자로 나선 시드니올림픽 2관왕 알렉세이 네모프(러시아)가 시원스러운 동작과 고난도의 기술을 선보인 뒤 착지했다. 그러나 박수와 환호를 보낸 관중들의 기대와 달리 심판들이 매긴 점수가 9.725로 그때까지 나온 선수들 중 3위에 머무르자 관중들은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는 포즈를 취하며 휘파람과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엉터리 채점이라는 불만이었다.
올림픽 사상 유례가 드문 관중석의 격렬한 ‘채점 야유’는 약 10분간 계속됐다.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우~!” 소리를 외쳐댔고, “네모프”를 연호하기도 했다. 심판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장내를 두리번거렸다. 한 IOC 관계자는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며 “대체 무슨 일이냐”고 자원봉사자들에게 물어봤다.
다음 연기를 펼쳐야 하는 폴 햄(미국)이 무대에 오르자 관중들의 야유는 더욱 커졌다. 당황한 햄은 팀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무대에서 내려와 관중석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심판들은 한데 모여 상의를 했다. 그리고 곧 네모프의 점수가 9.762로 올라갔다. 9.6으로 판정한 말레이시아 심판과 9.65를 불렀던 캐나다 심판이 9.75로 점수를 변경한 것이다. 하지만 분노한 관중들의 야유는 더욱 거세졌다.
경기가 중단될 위기에 이르자 판정의 대상자인 러시아의 알렉세이 네모프가 무대에 올랐다. 이번엔 박수가 터졌다. 네모프는 관중석을 향해 나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야유를 그만 보내자”고 설득했으며 손을 내저어 관중들에게 자리에 앉자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잠시 가라앉는 듯하던 소란은 햄이 등장하면서 다시 계속됐고, 햄은 연기의 절반 정도를 야유 속에서 해내야 했다. 햄이 비슷한 연기 수준에도 9.812를 받아 중간 순위 1위가 되자 관중들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야유를 보냈다.
햄은 결국 이고르 카시나(이탈리아)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5위에 그친 네모프는 “모든 것이 사전에 결정돼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공정하지 못했고 마지막 약간의 실수를 한 것이 나를 떨어뜨리려고 작정한 심판에게 좋은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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