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웠던 이 땅의 모든 짐을 벗고 당신이 그 좋은 천국으로 가신지도 벌써 10년 세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세월이 가면 무뎌지리라 여겼는데 웬일인지 더욱 깊어지는 그리움에 심한 몸살을 앓습니다.
귀중했던 모든 것을 전쟁 속에 고스란히 묻고 피난길에 올라 설움 많은 세월을 지낸 후 정착하게 된 충청도 서산의 아름다운 시골, 그 곳에서 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 귀한 추억을 내게 주셨습니다. 밤마다 밥상 위에 콩이나 씨앗들을 쏟아놓고 돌과 뉘를 골라내며 들려주시던 옛날 얘기, 피난 얘기, 성경 얘기, 심지어 당신의 첫사랑 얘기까지… 듣고 들어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당신은 강산같이 눈이 쌓이는 한 겨울에도 어김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셨죠. 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면 싸-아하게 밀려들던 그 겨울바람의 감촉에 잠이 깨어, 문지방을 넘는 당신의 하얀 버선발과 까만 두루마기 자락을 누운 채로 실눈 뜨고 바라보는 것이 너무도 좋고 행복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답니다.
치료비로 그 많던 재산 다 없애고도 결국은 돌아가신 아버지 덕분에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부터 우리는 심한 가난을 겪어야 했죠. 끼니도 어렵던 그때에도 당신은 오가는 어려운 이들을 죄 불러들여 먹던 밥그릇까지 내어주시는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셨죠.
칭찬이 자자하던 음식솜씨와 부지런함, 타고난 지혜와 탁월한 리더십, 근사한 인품 탓에 항상 존경받고 사시던 분이, 뒤늦게 나와 동생을 거두시느라 자존심 다 버리고 바닥을 헤매며 겪으셨을 아픔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노년에 고혈압과 당뇨로 쓰러져 반신이 마비되고, 대부분의 기억을 다 잃어버렸음에도 평생의 습관대로 밤 9시만 되면 정확하게 기도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가난한 전도사와 결혼해 고생하는 딸에게 “넌 좋은 남편 만나 사랑 받고, 세상에서 가장 복된 일을 하며 사니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네가 굶는다고 해도 걱정 안 한다”고 말씀하셨죠? 맞아요. 그때부터 난, 맡겨진 일을 귀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신께 대한 최고의 효도라 여기며 살았고, 그래서 지금도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습니다.
범사에 지혜롭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진실했으며, 기도하기를 쉬지 않던 당신이 평생을 준비하며 그리던 본향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 날, 한국에 갈 수 없었던 난, 소속해 있던 합창단에서 주최한 어머니날 행사에 참석하신 노인들 앞에서 ‘어머니 은혜’ 노래를 가슴이 터져라 불렀었죠.
또 그 날이 돌아왔습니다. 당신이 내 어머니였음이 생각할수록 감사합니다. 복 받은 내가 어머니, 내 어머니를 마음놓고 그리워할 수 있는 이 오월이 그래서 더욱 행복합니다.
김 선 화 (샌 페드로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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