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적표를 가져왔다. 성적표라고는 하지만, 우리 자랄 때처럼 등수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닌데, 긴장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조심스레 들쳐 보았다. 큰 아이는 제법 성적이 괜찮다. 역시 내 딸이란 생각이 들면서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아이의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성적도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성적표를 받아 보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란 듯이 성적표를 내 밀고는 제 누나와 신나게 떠들고 있는 녀석의 심성이 더욱 고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일부터 가정에 대한 설교시리즈를 시작했다. 먼저, 좋은 부모가 되지 않고는 아름다운 가정을 세워 갈 수 없기에 먼저 부모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성경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기준에 비추어, 과연 나는 몇 점짜리 부모인지 교인들과 함께 스스로 성적을 매겨보았다. 형편없는 낙제점수였다. 나 말고도 낙제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 보였다.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 들고는 할말이 그리도 많았는데, 부모로서 내 자신의 성적표를 보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좋은 부모와 바른 자녀 양육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나는 자녀들을 잘 키우고 있으니, 여러분도 부모역할을 제대로 하고, 자녀들을 똑바로 잘 가르쳐야 합니다”라는 식의 설교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큰 소리 칠만한 입장이 되지도 못하는데다, 우리 교회에도 자녀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며 애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 본 적이 없다.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인지도 몰랐고, 누구도 가르쳐 주려 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배울 기회조차도 없었다. 본능적으로 부모 노릇을 해 왔을 뿐이다. 이민가정에서는 자녀교육의 숙제가 더욱 버겁기만 하다.
우리 중에는 자녀교육에 있어, 이제 막 전반전을 뛰기 시작한 부모가 있는가 하면, 후반전을 뛰는 부모도 있고, 힘겨운 연장전을 치르고 있는 부모들도 있다. 미국과 한국의 온갖 아동심리학과 교육학 이론을 섭렵하면서 전반전을 뛰는 부모의 마음에는 꿈이 크지만,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다. 후반전에 접어든 부모들은 아이들의 생각과 문화를 미처 따라 잡지 못하는 것만 같아 초조와 불안을 감출 수 없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연장전으로 넘어가게 된 부모들은, 지치다 못해 혼돈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가지가 있다. 그 어떤 순간에 이르렀다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모가 포기하지 않은 자녀는 결코 포기된 인생을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인내로 마지막까지 역전승을 꿈꾸며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부모만이 저들의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이루어 내는 유일한 거름이기 때문이다.
김 동 현 목사 (언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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