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따라 오르니, 저만큼 한 줄기 길을 따라 천상에 들어가는 문처럼 눈 덮인 일주문이 서 있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니 저 높이 아득하게 깍아지른 바위 끝에 외롭게 서 있는 종각이 고상한 절개를 지닌 선비처럼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의 눈 덮여 늘어진 가지들 사이로 모습을 보인다.
적막 속에 둘러싸여 있는 신비한 능선 속에서 천상의 경계를 이룬다.
법당에서 예배하고, 종각 옆 바위에 서서 허공을 몸 삼고 산아래 저 멀리 내려다보니 성인의 공덕이 바로 이와 같은 장엄이구나하고 느껴진다.
성인들은 끝없는 세월을 통해서 수 없는 난행과 고행을 닦아 위없는 진리에 이르는 것이다.
생사(生死)가 없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없는 ‘허공의 법신’을 ‘참나’로 깨달아 다함이 없는 지혜와 자비의 덕화를 나투어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허공을 몸으로 삼고, 그 거룩한 공덕의 향기를 눈 덮인 장엄한 산자락처럼 사방으로 펼쳐서 중생을 제도하시되 물듬이 없어서 항상 저 장엄한 능선처럼 향기롭고 부드럽고 밝고 따스한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내려오니, 벌써 만개한 설화들이 녹아 내리며 시들어가고 있었다. 참으로 삼계(三界)의 일이란 무상(無常)하여 순간에 변하고 무너지는 것임을 느꼈다. 우리가 치악산에 오르는 것은 견성암이 있기 때문이듯이, 우리의 삶에는 오르고 싶은 꿈이 있다.
우리의 삶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애써 오르는 길이다. 그러나, 가는 길이 힘들다고 옆에 있는 작은 즐거움에 걸음을 멈추면 날이 저물기 전에 그 곳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 때에 더 큰 행복을 경험할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
불법을 배우는 사람의 꿈은 진리의 실현, 곧 허공의 몸을 성취하는 데 있다. 허공의 몸을 깨닫고 공덕으로 장엄한 산(山)이 되어서 사방으로 자비의 손을 펼쳐 모든 생명들을 이롭게 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다.그러나, 공덕의 향기를 나투기 위해서는 눈꽃을 피우는 차가움과 같은 매서운 발심(發心)과 수행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탐욕과 어리석음의 열기에 녹아버리면 아름다운 꿈은 오히려 탐욕의 악취가 되어 세상에 질척하고 추한 모습만 더할 것이다.
새해에는 탐욕의 열기를 식히고 버리어 차가운 눈꽃의 맑음으로 오직 견성암을 바라보면서 꿈의 산의 정상에 올라가 님의 소식을 들어보자.
어제 밤에 눈 오더니/ 날이 밝아 동이 트고/ 가지마다 흰 백송이 꽃이 피고/ 뿌리마다 이어가니/ 천상 저 높은 산 위에는/ 골짜기마다 칡뿌리 이어가고/ 칡꽃이 만발했으니/ 길을 걷던 나그네의 대피리 소리는 온 누리에/ 임의 소식 전달하니/ 만꽃이여!/ 임의 소식 들었는가 하노라.(대행큰스님 게송)
원공 스님(뉴욕한마음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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