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문학박사>
늦은 밤, 시내에서 시내버스에 올라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막차라서 그런지 정차하는 시간이 꽤 길어졌다. 이에, 차안에서 얘기를 나누던 두 젊은이가운데 한 명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발로 차 보닛(bonnet)을 발로 쿵쿵 차면서,
아, 쓰바, 이 똥차 이거 빨리 안가나?
라고 짜증을 내었다.
그 소리가 꽤 커서 운전 기사는 물론 차안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었다. 승객들의 시선은 그 두 젊은이에게로 향했다가, 운전기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기 위해 운전기사 쪽으로 옮겨갔다. 두 젊은이는 그저 약간 불량기가 있어보는 평범한 학생처럼 보였다. 근데, 백미러를 통해 두 젊은이를 힐끗 돌아보는 기사양반을 보니, 치켜 뜨는 눈매가 매서운 것이 전체적 인상은 예사롭지 않아 꽤 험악해 보이기까지 했으며, 체격은 아주 다부지고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승객들은 모두, 이제 그 젊은이들이 기사 양반한테 혼이 날 거라 생각하며 숨을 죽이고 아연 긴장을 하면서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일순간이 지났다. 그런데, 버럭 호령이라도 할 것 같던 그 기사양반은 젊은이들을 돌아보며 씩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네, 손님, 똥이 차면 갑니다.
운전 기사의 이 말에 버스 안의 승객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고, 두 젊은이는 무안하여 얼굴이 벌개진 채로 안절부절하며 아무 말도 못했다.
*******
위의 이야기에서 기사 양반의 대답은 정말 기지가 넘치는 유머가 있으면서도 촌철살인(寸鐵殺人)하듯이 그 젊은이의 허물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 기사의 대응은, 무학대사가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한 것과 같은 기지와 해학이 담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상황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재치와 지혜는 무학대사의 답보다 더욱 뛰어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운전 기사는 상대방의 허물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또한 기사로서 본분을 잊지 않고, 손님을 대하는 에티켓도 그런 대로 잘 유지하고 있으며, 그 젊은이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하고 있다.
허물을 지적했다는 것은 자기가 타고 있는 차를 똥차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바로 똥이 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또한, 비록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고 무례한 언행을 하는 승객이지만, 승객이 빨리 안가냐?하고 묻는 질문에 일종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운전기사로서 그 순간의 자기 본분을 잊어버리지 않고 손님에게 존칭을 사용하며, 똥이 차면 갑니다.라고 승객의 물음에 분명히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똥이 차면 갑니다.라는 명쾌하고 짧은 답변으로써, 무례한 손님의 잘못을 바로 일깨워 얼굴을 붉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승객을 손님으로 대접을 하여,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할 정보를 다 제공했으니, 그 운전 기사의 경우가 태조 이성계의 허물만을 지적한 무학대사의 경우보다 더 정교하고, 치밀하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매몰되고 대상에 끄달려서 집착하고 동일시와 착각을 일으킨다. 그래서, 매순간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본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며, 상대를 향한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 곧 자신이 돼지가 되고, 똥이 되는 지도 모른 채 살아가기 일쑤이다. 무학대사와 위 이야기의 운전기사와 같이 지혜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기지에 넘치는 일상의 대화를 통하여서도 대상에 대한 집착과 동일시, 착각으로 만들어낸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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