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의 아가씨는 예뻐요,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다음 가사는 모르겠지만 옛날 대중가요 중에 꽃집의 아가씨라는 노래가 있었다. 꽃집의 아가씨를 노래하는 그 사람에게는 꽃보다 더 예쁘다는 내용인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정말로 속사람이 꽃 보다 더 예쁘고 물보다 더 맑은 꽃 집 아줌마를 안다.
오십대에 갓 들어선 중년의 그녀! 그녀는 십대와 같이 있어도 귀엽고(?) 이십대와 함께 놀아도 빛난다. 삼십대와 이야길 해도 통하고 사십대와 운동경기를 해도 단연 우승이다. 오십대는 말할 것도 없고, 육십대 칠십대와 어울려도 물 만난 고기 같다. 그야 육십대나 칠십대보다 엄청 젊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어떤 사람과 교제를 하다보면 조금씩 그 사람의 결점이 나타나고 어떤 땐 실망감이 들 때가 있다. 나자신도 상대에게 그런 과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말하고 있다. 그 뿐인가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은 후 나쁜 기분이 앙금이 되어 떠올라 오게 하는 사람도 있다. 다시 만날까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열거하기 곤란한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지만 그녀는 위의 사항에 전혀 해당사항이 없음이다. 얼마나 주위를 기분 좋게 하는지 모른다.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부지런하고 활동적이라 글자 그대로 깨어있고, 살아 숨쉬는 심장박동이 들리는 듯 하다.
사람들은 꽃꽂이 된 화려함만 본다. 꽃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지만 꽃꽂이의 자태는 꽃집아줌마의 손가락으로 만들어 지는게 아닌가! 그녀의 손가락은 가시에 찔려 상하고 터져 있다. 꽃꽂이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그녀의 상처를 통하여 재생산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녀에게는 다른 아픔이 없는 것일까? 여호와의 눈을 피하여 도망가는 요나가 되는 때도 있고, 탈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있던 엘리야 같은 때도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그렇게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 숨쉬기를 잘 조정하는 현명한 사람인 것 같다. 지금도 남과 같은 고통, 남이 겪는 역경을 다 겪으면서도 그렇게 밝고 맑게 살수 있는 비밀을 가진 자이다. 바라만 봐도, 음성만 들어도 은혜가 되는 사람!
그녀와 내가 만난지도 몇 년이 지났나보다. 나는 세월이 쌓일수록 그녀를 짝 사랑하게 되었다. 한번도 내 속마음을 내 비친 적이 없어 그녀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 듯한데 신문지상을 통하여 이렇게 깜짝 고백을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오늘도 첫 문장이 대중가요 가사로 시작했으니 마지막 문장도 그렇게 마무리 지어볼까? “굳세어라 금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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