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종교전문기자. 목회학 박사)
얼마 살지 않은 생애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나는 죽음을 타고 태어났나 보다. 어머니가 나를 해산할 때 탯줄이 내 목을 세 번이나 감고 있었다. 산모와 아기는 둘 다 거의 죽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나를 해산하고 넉 달을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세상에 나왔다. 산파의 응급조치로 다행히 목숨을 부지, 세상을 살게 되었다.
태어난 지 1년만에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강원도에 살던 우리 식구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자동차를 타고 강원도 골짜기를 지나갈 때 나는 심하게 울었다. 공산군 점령 하에 있던 동네라 들키면 죽음이다. 우리 식구는 자동차에서 모두 내렸다. 자동차는 얼마 안가 골짜기로 굴러 떨어졌다. 차에 남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맞았다.
피난을 다녀와 아버지가 장사 할 때였다. 물건 사러 간 아버지 돌아오던 날이었다. 난 가게 앞으로 달려나가다 갑자기 차에서 떨어지는 물건뭉치에 깔려 깊은 도랑창에 쳐 박혔다. 4살 박이 내 머리는 박살이 났다. 머리와 이마에 수많은 유리파편이 꽂혔다. 다행으로 파편은 급소를 피해 박혀 살아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중학교 입학시험 치러 서울엘 갔었다. 묵었던 집은 세탁소를 하는 곳이었고 작은 방에서 지냈다. 어느 날 새어든 연탄 연기에 중독 됐다.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거의 죽은 상태였다. 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조치로 정신은 차렸다. 입학시험은 망쳐버리고 말았지만 다시 살아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서울서 고등학교 다닐 때 식중독에 걸렸다. 신문팔며 고학 할 때 너무 굶어 서울역 앞에서 파는 돼지 비계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병원으로 가 며칠만에 깨어났다. 주위 사람들의 말로는 다 죽은 줄 알았단다. 그렇지만 깨어났다. 이 때도 죽음이 나에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다시 삶은 연장되었다.
한국에서 육군으로 입대해 최전방에서 근무할 때다. 대대 인사 서기로 연대 인사과에 볼일을 보고 다시 대대로 돌아올 때 길을 잘못 들었다. 산을 넘어야 했는데 대포 사격시간에 포탄이 떨어지는 지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후방 수마일 밖에서 쏘는 포탄이 떨어져 파편이 수없이 스치며 지나갔다. 낮은 포복을 해 겨우 산을 넘었다. 구사일생이었다.
육군 병장 때 휴가를 맞아 부산으로 갔다. 형이 그 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철, 혼자 다대포 앞 바다로 나가 수영을 했다. 수영하다 보니 고깃배가 보였다. 그 곳까지 수영을 했다.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올 계산이었다. 배에 올라탔다. 계산착오였다. 그 배는 다른 곳으로 가는 배였다. 머뭇머뭇 거리다 다시 바다로 뛰어내렸다.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었다. 수십 길 되는 바다 한 복판이다. 아무리 헤엄쳐도 제자리였다. 팔과 다리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구조대도 없었다. “아! 이대로 바다 귀신이 되는구나” 그 순간 번개처럼 떠오르며 뇌리를 스친 것. “물속 헤엄을 치자”였다. 결국 해냈다. 죽음의 미소가 비켜갔다.
미국에서의 일이다. 자동차 사고가 여러 번 있었으나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자동차 사고 시 결정적 충격은 피해갔기 때문이다. 1986년 브루클린에서 장사할 때, 권총으로 위협받은 일이 있으나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최근,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지나쳤다. 3월21일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강도와의 만남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렇듯 한 순간이다. 살아 있어야 좋은 일도 할 수 있다. 좋은 일 많이 하다 노년이 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영광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먹고살기 바빠 제 식구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와중에 죽음을 맞이한다면 슬픈 일이다. 죽음은 곧, 개인 삶의 종말이며 책임도 의무도 없는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인간 죽음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때인 것 같다. 자녀를 군인으로 전쟁터에 보내놓고 애타하는 부모도 많이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은 너무나 귀중하다. 전쟁에 참여한 자녀들이, 배우자들이, 부모들이 하루속히 전쟁이 끝나고 무사귀환 할 수 있도록 우리는 기원해야겠다. 어떤 상황이건 자신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죽음은 슬픈 것이다.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 수명이 다해 하늘이 목숨을 달라할 때, 그 때까지만 살아도 큰 행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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