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은 싱겁기 짝이 없다. 건들건들 부는 모습도 싱겁지만 생명을 설레임으로 물들게 해 놓고 장차 어쩌자는 것인지 싱겁기 한량없다.
하늘도 봄바람에 설레이여 봄비로 허공을 젖게 하고 대지도 따라 설레이여 차가움을 풀고 따뜻함을 토해놓는다. 푸른 초원, 연두빛 나뭇가지 위의 새 싹, 물소리 새소리 할 것 없이 어느 것 하나 설레지 않는 것이 없다.
바야흐로 온갖 것이 설레임으로 물이드는 봄날이 왔다. 내 생애 봄날은 몇 번이나 찾아왔던가, 단 한번도 설레임없이 보낸적은 없지만 이번 봄만큼 생명들의 설레임에 귀 기울이기는 처음이다.
팔로알토 동네길을 두 세 시간씩 걷기운동으로 달아다니며 집집 마다의 정원에 피어있는 나무와 풀과 꽃들을 감상하는 일은 여간 향기로운 일이 아니다.
동백꽃은 진한 초록색을 잎새위에 얹혀있듯 피어나는 것이 마치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을 보는 듯 하다. 그 강한 붉은 빛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사람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동백은 한잎한잎 떨어지지 않고 꽃송이 전체가 모가지가 잘리듯 떨어져 땅에서도 그 붉은 기세를 흩트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 특색이다. 이런 동백은 집집마다의 정원에 심어져 있어 쉴새없이 볼 수 있는 꽃이지만 물론 한국의 저 남도에 무더기로 숲을 이루고 있는 그 장관만은 못하지만 그 정취는 여전하다.
어느날에나 자연은 참신하지만 특히 봄날의 참신함은 그 선명하고 맑음이 더욱 강하여 우리로 하여금 설레임의 충동으로 가득차게 한다.
고목과 뿌리를 의지해서 피어나는 꽃이나 새 싻의 움틈에서 참신함의 절정을 보는 것은 뛰어난 안목이다.
묵은 것에서 새 것이 생겨나는 온고지신이 아니겠는가. 묵은 것의 둥치를 짜려고 뿌리를 뽑아버리면서 개혁을 부르짖는 것은 어설프고 거칠어 솔잎을 씹는 듯한 산뜻하지 못한 생경한 느낌이다.
사라토가에 있는 하꼬네 산방도 마을 안에서 봄맞이 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일본식으로 꾸며놓은 넓은 산골짝 정원에는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섬세한 정감을 느낄 수 있는데 중간중간에 시설한 上房이 정갈스럽다.
임제 스님의 수행을 받드는 이곳에서 발밑을 살펴보라(조고 각하)는 경책을 써붙여놓고 다다미 큰 방에 들어가 묵언으로 한식경 앉아있다가 나가도록 안내 되고 있다. 임제가 누구인가 사자의 온전한 울부짖음을 감추어 가지고서 뭇사람의 뇌간을 찢어버리고 나아가 짐승같은 마음의 거래를 단 칼에 끊어 버리는 그런 날강도 같은 수법을 가진 스님이라고 찬탄되고 있는 분이다.
무엇이 짐승같은 마음의 거래인고? 아수라 같은 인간의 승부심이니 피아를 가려서 지옥갈 업을 키우는 것이라 답하였다. 우리의 발밑에는 이 승부심이 지뢰밭이 되어 깔려있으니 조심해서 살펴보고 걸음걸음 할 것이며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으면 그대 임제를 한번 찾아볼 일이다. 차를 타고 마을 길을 돌아보다 보면 도처의 뜰에는 전쟁은 안 된다는 팻말이 눈에 띄인다. 그 팻말 옆에 피어있는 꽃들은 집 멀리 떠난 나그네의 고향길 잊음을 애석해 하는 듯 하다.
국익을 따져서 싸우는 일 없이, 사익을 따져서 욕심내는 일 없이 풍년들고 태평한 내 고향을 바랄 뿐이다.
설레임이 없는 봄은 봄 같지 않는 봄이라하여(춘래 불사춘) 우울함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지금 막 시작한 이라크 전쟁의 현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피아간의 군인이나 민간인들이나 그들 인생의 가장 봄같지않는 봄을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천상천하에 가장 존귀한 것은 나뿐인 것이라. 전쟁의 참화가 지나간 자리에도 꽃은 피는 것이니 자중자애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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