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본보 특별후원으로 퀸즈 칼리지에서 플러싱 YWCA 창립 25주년 기금모금 조영남 콘서트가 열렸다.
사실 나는 조영남 세대는 아니다. 여고생이었을 때, 가수 조영남처럼 더벅머리에 두꺼운 갈색 뿔테 안경을 쓴 작은 오빠가 가끔 목청이 터져라 ‘딜라일라’를 부르면서 대학 재수시절 청춘의 답답함을 달래는 것을 보았었다.(오빠야, 보고싶다) 이날 콘서트장에 일찍 도착했음에도 주차장은 이미 가득 차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몇 블럭 떨어진 곳에 스트리트 파킹을 하고 공연장으로 갔다. 구름처럼 몰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2,200여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할 것 없이 70, 80년대 조영남의 히트곡과 신곡을 들으며 즐거워했다. 이날 내가 가장 관심 있던 것은 40~50대 중년들의 반응이었다.다들 조영남의 노래와 농담 섞어 말하는 지난 세월의 고초를 들으며 만감이 교차하거나 옛 생각이 마구 마구 머리 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지나간 것은 아름다울 수 있다. 아픔, 상처조차 이미 지나간 것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
이날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한 중년은 어떤 세대인가.
40대는 70년대 학번으로 50년대생이다. 이민 온 햇수가 10~20년 사이라면 70년대에 대학 유신체제를 겪었고 부마사태와 12·12사태도 보았을 것이다. 사이먼과 가펑클, 밥 딜런, 잉글버트 험퍼딩크,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도 들었을 것이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 송창식의 ‘고래사냥’ 양희은의 ‘아침이슬’ 등도 수없이 불러보았을 것이다. 김지하의 시 ‘오적’ 복사판을 몰래 돌려가며 보고 정지용의 시 ‘유리창’과 ‘호수’, 그 서정성에 감탄하며 남몰래 암송했을 것이다. 지금은 시위가 일반화되었지만 그때는 젊음의 방황과 갈증을 연극이나 탈춤으로 해소시켰을 것이다.
특히나 50대는 60년대 학번으로 1960년대 상징인 비틀스를 즐겨들으며 주산의 마지막 시대이자 컴퓨터 문맹으로서 한국에서는 IMF 이후 퇴출 1순위가 된 세대이다.4.19와 5.16에 이어 아침 일찍 재건체조로 몸을 풀고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한강의 기적이 바야흐로 움트던 시기를 건너왔다.
아무리 불행하고 암울한 시대였을 지라도 청춘은 싱싱하게 피어올라 그 시절에도 사랑이 있었고 기쁨도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도 있었다.
청년문화의 상징이던 청바지와 통키타와 생맥주가 일상생활이었거나 조금이라도 맛보고 미국으로 이민 온 세대들, 흰머리가 늘어나고 잔주름이 얼굴에 곱게 내려앉은 중년들, 이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퀸즈 칼리지 콜든센터를 찾은 것이다.
보통 이민 초창기에는 안내지와 약도를 들고 뉴욕 근교를 비롯, 미동부 지역의 유명 관광지를 샅샅이 훑고 다닌다.처음 1년간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옥상에서 나란 존재가 이리 작은 것인가 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센트럴 파크의 방대함에 놀란다.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기념사진 한방 찍고 사우스 스트릿 시포트에서 밤하늘에 매달린 선녀의 다리처럼 아름다운 브루클린 브릿지를 보고 감탄해 마지않는다.
이민 5년차가 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한 편 보았고 뉴욕 근교 농장으로 애플 피킹도 갔다왔고 아틀란틱 시티에 가서 블랙잭도 해 보았다. 그리고 이민 15년, 20년이 넘어가면 갈 데가 없어진다. 아이들은 다 커버려 자기네끼리 놀러가려 하고 나이든 중년들은 갈 데가 없다. 미국의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한번 가본 곳은 다시 안 가게 되고 모처럼 한가한 저녁, 부부가 동반외출을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이 나이에는 익숙하고 편한 것이, 낡고 허술해도 그냥 피부처럼 자연스레, 마음 촉촉하게 다가오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고등학교 동창, 죽마고우를 만나 옛이야기를 하게된다. 이날 콜든센터를 찾은 중년들의 ‘그리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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