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칼럼
▶ 김명욱 <종교전문기자. 목회학 박사>
500여 년 유교사상의 뿌리 속에 선비와 양반주의를 거쳐 권위주의가 지배하던 한국의 정치풍토가 급류를 타듯 바뀌는 것 같다. 캐주얼풍 양복 차림에 지프차 싼타페를 직접 몰고 취임 첫날 출근한 문화관광부 이창동(49) 장관. 파격이다. 이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형식이 굳으면 내용이 살지 못한다"라고 했다.
이창동 장관은 각국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앞으로도 출·퇴근은 차량이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공용차는 공식 업무에만 쓰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 장관은 "국무위원 배지도 달지 않고 취임식을 갖지 않는 대신 취임사를 직접 써서 홈페이지에 올리겠다"고 했다. 영화의 시나리오 한 부분을 읽는 것 같다. 오래 살고 볼일이다.
행정자치부 김두관(44) 장관. 그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취임사를 통해 "직원과 장관이 복도에 서서 격의 없는 토론을 벌여야 한다"며 권위주의를 과감히 버릴 것을 권고했다. 또 김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도 소파의 배치가 ‘야인시대’ 식이라 어색하다며 원탁 테이블에 둘러앉아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남해군의 군수에서 일약 5단계를 뛰어 넘어 장관이 된 김두관 장관은 서울에 올라와 집 없는 설움도 겪고 있다. 그는 서울 목동 친구 집에 얹혀 살며 팩시밀리와 행정전화를 설치해 업무를 보고 있다. 그의 측근은 "업무가 숨가쁘게 이어져 집 문제는 생각도 못하고 있다"며 "더부살이를 당분간 계속할 것"이라고. 연속극의 한 장면처럼 착각된다.
강금실(46) 법무부 장관 기용은 이번 조각 중 가장 획기적인 것으로 꼽힌다. 강 장관은 "법무부는 법의 집행뿐만 아니라 ‘소수집단자(minority)’의 인권 향상에도 적극 힘써야 한다"며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호주제 폐지에 적극 나설 방침으로 호주제는 남녀 불평등을 야기하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라고 말했다. 기대해 볼만하다.
강 장관은 또 "앞으로 여성, 장애인은 물론 외국인 근로자인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향상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여성 장관 4명 중 한 사람이며 그 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 강 장관 외 여성 장관은 김화중(58) 보건복지부 장관, 지은희(57) 여성부 장관, 전 여성부장관으로 이번에 환경부장관이 된 한명숙(59) 장관 등이다.
이창동, 김두관, 강금실 장관은 이번 내각에 발탁된 유일한 40대 장관이다. 뿐만 아니라 참여정부를 기치로 내건 현 노무현 정권에 민주화운동세력으로 참여한 진보 세력이다. 이번 내각은 50대가 15명, 40대가 3명, 60대가 1명으로 평균 년령이 55세로 김대중 정권 초기 내각때의 59세에 비해 4살이나 젊어졌다.
며칠 전 앨라바마 주에서 목회하고 있는 50대 초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50대도 이제는 한국에서 밀리나 봐요. 40대 장관들이 세 명이나 나왔는데 전부 개혁 쪽이군요. 아무쪼록 그 젊은 장관들이 민의를 잘 파악해 대통령을 잘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이 이제는 점점 젊어지는군요."
후배 목사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이번 내각에 40대는 3명이요 50대가 15명이다. 그리고 60대는 1명이다. 60대는 거의 사라진 편이다. 50대가 15명으로 내각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은 56세다. 내각의 평균 년령은 55세다. 결코 50대가 밀린 것은 아니다. 50대가 한국 정부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 중에 40대가 3명이니 돋보이는 것일 게다.
양 김씨의 시대는 지나갔다. 양 김씨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한 명 남은 김씨는 평생 2인자로 아직도 그의 정치 생명은 끈질기게 살아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70대를 훨씬 지나 80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들은 어찌 생각할지. 싼타페 지프차를 몰고 서부의 사나이처럼 출근하는 영화감독 출신의 현대판 장관을. 그들 역시 오래 살고 볼일이라 할 것인지 궁금하다.
원탁테이블에 둘러앉아 얘기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젊은 장관. 한 군에서, 한 나라의 행정자치를 지휘하게 된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완벽히 잘 돼 있다. 여성이 법무부 장관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파격적이어도 좋다. 진정 노무현 정권과 세 내각을 통해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참된 민주주의가 한국에 정착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파격이 지나치면 파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지우지 못했다"한 어느 기자의 말도 잊지 말아야겠다. 평균 55세로 젊어진 한국 정부의 건승을 하늘에 빌어본다.
김명욱 <종교전문기자. 목회학 박사>
myong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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