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자욱히 밀려오던 어느 늦은 겨울날 나는 Ocean Beach를 걷고 있고 내 머리 위로 갈매기가 떼를 지어 가고 있다. 얼마전에 친구가 찍어준 사진 속의 내 모습이다. 그 사진을 보면서 20년전 친구들과 이 오션비치의 모래 위를 걸었던 그때의 기억들이 떠 올랐다.
그때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가 모래 위를 걷고 뛰며 즐거워 했었다. 이 사진 한장으로 인해 그때를 떠 올리니, 내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세월이 지나면 옛날이 잊혀지기 마련이지만 사진이라는 것이 과거를 되살려 주는 것 같다.
미국이 어떤 곳인지, 이민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채, 그저 부모님을 따라 샌프란시스코에 왔었다. 당장 필요한 것이 영어라 오전에는 어덜트 스쿨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도너츠 가게에 가서 일을 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한창 미팅도 하면서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을 시기였지만 그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그저 일을 하고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 밖에 몰라서 많은 내 또래의 이민 온 소녀들처럼 나도 그렇게 했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오션비치에 가곤했었는데, 그곳에 가면 여기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조차 잊어버리고는 바다를 보고 갈매기와 같이 뛰어 다니는 즐거움에 빠지곤 했었다.
그때의 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언제부터인가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진에 내 모습을 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얼굴은 왜 그리 크며, 어깨는 왜 그리 넓은지. 아직 내 마음은 그 옛날 소녀적 그대로인데 사진 속의 나는 늘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불평을 늘어 놓으니 나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친구 언니가 현재의 내 모습보다 앞으로의 내 모습이 더 젊어 보이거나 예뻐보일 수 없다면서 지금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나의 모습이니 열심히 사진에 담아 두리고 권했다.
그 말을 듣고 옛날 사진을 보니, 그때는 뚱뚱하고 못생겨 보인다고 찢을 뻔 했던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내가 이럴 때가 있었나 싶게 어리고 예쁜 아가씨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10년후, 20년 후에 보는 지금의 내 모습은 눈가의 주름이나 굵은 허리는 없어지고 젊고 싱싱한 여자로만 보이지 않을까?
빡빡한 이민생활에서, 별다른 추억도 없었던 나는 가끔씩 사진을 보며 밋밋한 내 이민생활을 되새겨 본다. 나중에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들 하지 않는가? 지금은 의미없는 사진 일지라고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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