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두차례 향수병이 몰려 올때마다 남편은 Half Moon Bay 바닷가로 날 데려다 준다. 그곳에 발도 담그고 손도 담그고 몰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내고향 가까운 서해와 남해 바다 어딘가에도 이바닷물이 흘러들어 가고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 내고 온다.
그바닷가에 서서 10여년 전 이 땅에 처음 들어 섰을때의 나의 초심(初心)을 늘 새롭게 다지기도 한다. ‘나는 여기 미대륙에 왜 왔는가? 나는 여기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세상은 어지럽다. 매일 날아 들어오는 뉴스엔 전쟁이야기, 끝없는 기근과 굶주림과 자연재해들, 동서남북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 부서지고 깨지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답답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세상이 어지럽다고 내생활안에 안주하면서 살아가자니 내부에 쌓이는 삶의 찌꺼기 또한 만만치않다. 단순건조한 이민생활속에 뜻하지 않게 불거지는 크고 작은 상처들, 아이들의 교육문제,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문제, 교우관계문제, 집집마다 이어지는 고통과 아픔들, 곪아터질 화농같다. 고여 있는 물은 썩을 수 밖에 없다.
바닷가에 서서 수십미터위로 솟아오르는 파도를 구경하다 그파도에 쏠려갔던 사람이 시간 반만에 구조된 뉴스를 본적이있다. 그사람이 거친파도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건 물밑의 잔잔한 파도를 타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잃지않고 견뎌냈기 떄문이다. 숨을 다시 내시기 위해 수면위로 떠올랐을때 구조대의 눈에 띄어 기적적으로 구조되었다.

세상구경 한답시고 뒷짐지고 서있다 보면 거센 파도에 휩쓸여 갈 수 도 있다. 세상이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문제에 휩쓸여 갈 수도 있다. 이럴때 초심(初心)은 나의 삶의 방향을 붙잡아 준다. 흘러가는 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력을 부여해 준다.
우리는 흘러가는 물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안주하여 고여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 때로는 찢기고, 때로는 상처가 나고, 때로는 깍여도 흐르는 물에서만 생명이 유지되고 상처도 쉬이 아문다.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포생활의 일원으로 부딪히고 견뎌내며 살아가는 게 중요할 할 것 같다.
가끔은 윗세대로부터 흘러오는 새물을 정중히 받아들이고 또 아래세대로 소중히 흘러 보내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명력 있게 살아갈 일이다.

그동안 글을 쓸 기회를 주신 ‘한국일보 여성의 창’ 담당자님들께 감사 드리며 추천해 주신 김영란님께도 감사드린다. 이민 100년의 커다란 물줄기의 흘러가는 한가닥을 잡고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의 졸필을 끝까지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