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 100년(1903-2003)의 영웅 9명이 2003년 1월 1일 LA 패사디나에서 열리는 로즈퍼레이드에 참가하여 미 주류사회와 전세계에 한인의 위상을 과시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탑승할 ‘100주년 꽃차’는 길이 30피트, 폭 10피트로 앞머리는 이민선 ‘게일릭호의 뱃머리로, 본체는 한국의 남대문을 상징하는 구조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03년 1월 13일 이민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는 하와이에서는 행사장이나 만찬회에 초대될 높은 분들에 대한 예우로 VIP라는 말이 큰 유행어가 될 것이라는 현지 언론의 시각이다.
이같은 VIP 열풍에 대해 현지 언론은 첫째 초대된 VIP들 중에는 자신을 최고의 귀빈으로 생각하고 귀빈대접(귀빈석·무료 만찬 참가)을 주최측에 요구하고 있다는 소문, 둘째 초대된 VIP들이 귀빈대접을 받고 금일봉 없이 가겠느냐 하는 일그러진 모습에 대한 소문에 주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는 100주년이 되었다는 결과만 보고 축제 분위기에 들떠 열광만 할일이 아니다. 100년전 우리의 이민 조상들이 사탕 수수밭에서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하고, 그 뒤 늙고 병들어 소리 없이 묻혀 간 이민 조상들의 고난사 제1장도 떠 올려보아야 한다.
「일업난 첨군자들 보십쇼. 미리견국(彌利堅國)에 가서 사년 동안만 일하면 넓은 땅을 줄 터이요, 뜻잇난 첨군자난…」1902년 서울 서대문과 인천 부둣가에 붙은 하와이행 이민모집 광고 내용이다.
그 당시 한말의 실정은 풍운사(風雲史) 그 자체였다. 「하와이로 가자」는 게 아니고 「허기져 못 살겠다. 어디든지 가자」는 것이었다. 황해도 지방을 위시해 전국적인 가뭄으로 대기근이 일어나고,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규탄하는 민란(民亂·東學革命) 까지 겹쳤다.
1902년 12월 22일, 소한 추위가 몰아 닥친 제물포 부둣가! 가난에 시달린 흰 바지저고리의 한국 이민자 121명을 태운 최초의 이민선이 제물포를 떠났다.
며칠만에 일본 고베(神戶)에 도착, 이곳에서 그들은 입국을 위한 신체 검사를 받았다. 그 중 20명이 신체 검사에서 불합격, 나머지 101명이 미국 게일릭호(S. S. Gaelic)에 탑승하였다. 남자 55명, 여자 21명, 어린이 25명이다.
상선(商船)이니 객실이 있을 리 없고 창고 바닥에 짐짝같이 실려져, 동으로 가는지 서로 가는지 방향 감각을 잃은 체 22일만에 하와이 히로 항(Hilo 港)에 도착하였다.
맞아 줄 사람도 반가워할 사람도 없는 쓸쓸한 부둣가! 맞지 않는 식단에 심한 뱃멀미로 기진 맥진한 상태에서 그들은 다시 신체 검사를 받았다. 그 중 8명이 배 안에서의 탁한 공기와 매연으로 눈병을 얻어 되돌아가고 93명만이 입국이 허락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탕수수 밭으로 실려갔다.
때는 1903년 1월 13일. 이것이 미국행 집단 이민의 시초이며, 100여년전의 일이다. 그들이 받는 하루 품값은 남자 1달러 25센트, 여자는 25센트의 저임금으로 시작되었고, 미국의 “다민족 혼합 정책"(多民族混合政策)으로 여러 민족이 섞여진 여러 개의 소집단 속에서 귀먹은 벙어리가 되어 하루 열 시간씩 중노동을 강요당했다. 그래서 더러는 이 악조건을 견디다못해 도망치다 잡혀 발목에 족쇄를 차고 일하기도 했다.
한말 1903년부터 1905년까지 불과 3년 동안 총 7,226명의 한인이 하와이행 이민선을 탔다. 여성과 어린이가 천여명이고 젊은 가장을 제외한 5,500백여명이 독신 남성이다.
이들 초기 한인 노동이민자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지난 98년 10월 빅 아일랜드 힐로(Big Island of Hilo)에 소재한 알라이 공원묘지에서 있었다. 이 제막식에 참석했던 4백여명의 한인들은 덮였던 천이 제막되는 순간 서로가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며 애국가를 불러 넋을 위로했다. 높이 3.8미터, 무게 10톤의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시문이 새겨져 있다.
『흰 옷 입은 조선사람 태평양 건너와서 / 낯선 땅 하와이에 푸른 꿈을 심었었네 / 앞서간 선조들의 뜻 백년 두고 새로워 / 사탕수수 그 농사는 채찍질에 해 저물고 / 사진신부 고운 손엔 마디마디 거친 세월 / 밭고랑 배어있는 땀 목숨 거른 이슬아! / 잃은 나라 되찾으려 한민족 한이 맺혀 / 피끓는 가슴으로 끼니 걸러 독립자금 / 어둡던 그 하늘 아래 불 밝히던 사랑아! / 바람 타고 구름 타고 고향산천 다녀오고 / 눈물로 별 헤던 밤 이젠 잊고 쉬소서 / 목메어 부르던 아리랑 우리 불러 드리리』
초기 이민자들, 그들은 선후배로 따진다면 우리들의 대선배이다. 하루 품삯 25센트 백동전을 손에 쥐고 석양을 향해 감사했던 그들이 였다.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는 축제(祝祭)인 동시에 엄숙한 제전(祭典)이다. VIP로 초대된 사람이나 VIP를 초대한 사람이나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가 이민 100년의 고된 고개를 일그러짐 없이 영광스럽게 넘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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