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시절 일일고사만 보면 늘 2등을 했다. 극빈자 가정에 일차적으로 옥수수빵을 나눠주고 시험 성적 1등부터 5등까지 남은 빵을 하나씩 나눠주었다.별다른 간식꺼리가 없던 그때, 입에서 살살 녹는 노란 옥수수빵은 6.25전쟁 후 미국이 원조해주는 옥수수로 만든 빵이라고 했다.
1등은 선두를 뺏길 까봐 늘 전전긍긍할 것이란 지레짐작에 앞에 누군가가 있는 2등은 마음이 편했다. 어려서 미국산을 가장 먼저 대한 것이 이 옥수수빵이었던 것이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의 영광을 구가하고 있는 미국, 그 1등 국가에 대한 세계 각국의 반미감정이 커지고 있다.
미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올해 7~8월 44개국 국민 3만8,2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2년 사이 반미 정서가 증가, 한국과 일본에서도 대미 우호도가 떨어졌을 뿐 아니라 가장 반미감정이 높은 중동 지역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90년대 들어서만 걸프전, 코소보, 르완다 사태에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국제 경찰 노릇을 하며 말 안 듣는 아이 칠판에 이름 적는 학급 반장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오다 보니 인심을 잃은 것이다.
자라면서 지켜본 미국은 어려서는 옥수수빵, 나중에는 원조물자가 옥수수 대신 밀가루로 바뀌며 칼국수와 수제비가 되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인 70년대 중 후반에는 혼기 앞둔 처녀들이 재미동포를 제1등 신랑감으로 여길만큼 미국에 대한 선망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80년대인 20대에는 “미국 나라, 좋은 나라, 강한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것처럼 미국 우상화에 앞장선 헐리웃 영화들을 숱하게 보았다.
러시아 키로프발레단 소속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주연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홍보한 ‘백야’(白夜)를 비롯, 근육질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람보’ 시리즈에서는 월남전 그린베레 출신 퇴역군인 람보가 미 군사작전 지역인 러시아, 그래나다, 파나마, 아프가니스탄을 무대로 피도 눈물도 없이 적진을 초토화시킨다.
그러나 헐리우드를 동원한 미국의 문화적 공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80년대부터 학생운동과 노조가 양성화되며 ‘전쟁 난 한국을 구해주고 폐허에서 일으켜준 고마운 나라’에서 ‘미군이 그은 삼팔선이 수천만 명의 이산가족을 만들었지, 모든 원조가 결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아직도 한국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라고 의식이 변화되어갔다.
더불어, 88올림픽을 거치며 나라가 부강해지자 90년대 재미동포 인기는 땅에 떨어지기 시작, TV-드라마 등 방송극에서는 홈레스 같은 존재로 전락하기도 했다. 90년대부터 미국에 와 살면서 현재의 한국민의 반미 시위를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 발언으로 북한을 건드렸고 주한 미군은 장갑차 사건 무죄 판결로 한국민의 가슴을 긁었다.
다음주면 한국에서는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우리에게 미국은 무시되어야 할 나라던가? 북한의 정체는 알 수 없고 강대국이 아닌 우리는 우리편 큰 나라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눈치만 보거나 비위를 맞추려해서는 안된다. 자존심 있는 외교를 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
쉽게 소신을 바꾸지 않으며 언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국민을 버리지 않는 사람,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동반자적 입장에서 미국을 대할 사람, 좋은 성격과 도덕성을 갖춘 눈빛이 맑은 사람 (부시는 사람의 눈을 보고 신뢰성을 판단하기도 한다지.)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민 뿐 아니라 해외동포를 다 한 품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한국에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얼마후 미 대통령 만나러 올 후보는 누구일까? 과거에 누구는 검정 선글라스 끼고 대통령 만나러왔는데 새 대통령은 눈웃음 치며 올까? 사투리 팍팍 쓰며 올까?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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